어느 해 봄 그것도 단 한 번
신을 짝짝이로 신고 외출을 한 다음부터
나는 갑자기 늙기 시작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진 않았지만
햇살 좋던 봄날 아침의
아무것도 아닌 실수였는데
그 일로 식구들은 나의 어딘가에서
나사가 하나 빠져나갔다고 보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장에 나가는 염소처럼 뻗디디며
한동안 혼자 뿔질을 해대던 나는
어느 날 마당에 나뭇짐을 벗어놓듯
먼 데 어머니 심부름을 갔다 오듯
그 속으로 들어갔다
아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세상 심부름 나오긴 했는데 무얼 주고 오라는 것인지, 받아오라는 것인지. 사립문 밖 나간다는 것만으로 즐거워 앞발이 뒷발을 쫓아오는지, 그림자가 벗겨졌는지, 발목에 걸렸는지 아무래도 좋았다. 꽃이 피면 앉아 웃고, 나비 보면 일어서 춤추었다. 소낙비에 젖기도 했지만 무지개 좇아 굽이굽이 산 넘고 물 건너왔다. 무얼 주고 무얼 가져갈까? 나는 늙고 너는 어려 신발 짝짝이로 신는 아가야, 팔십 년 심부름 새로 나왔구나! <시인 반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