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바이오의약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 사태 이후 의약품 신속심사제, 이른바 조건부 허가제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급증하고 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등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조건부 허가제는 환자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규제 완화”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고 국회 일각에서도 제도 제한이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향후 식약처가 제도 운영을 까다롭게 하거나 제도를 제한하는 법안이 발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제약업계는 규제 강화를 우려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한 바이오의약 제조업체 관계자는 “한미약품 파동으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주가 하락이 아니라 의약품 심사 및 허가가 엄격해질 수 있다는 것”이라며 “특히 신속허가제가 까다로워질까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다른 제약업계 관계자도 “신속허가제 폐지 주장이라도 나오면 업체들 입장에선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조건부 허가제는 적절한 치료제가 없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에 대한 희귀의약품의 경우 시판 허가 절차를 단축해주는 제도로 전체 3상의 임상시험 중 2상만 마친 상태에서도 우선 허가를 내준다. 업체들 입장에서 이 제도는 혁신성을 인정받은 개발 신약을 시장에 일찍 내놓을 수 있는 기회다.
전문가들은 한미약품이 조건부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면 규제를 해야 하지만 이번 사태로 제도 자체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이형기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는 “조건부 허가제는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 가운데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 환자들에게 치료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유익한 제도로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운영하고 있다”며 “한미 사태를 통해 문제가 드러나면 보완이 필요하지만 제도 자체의 근간을 흔들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앞서 한미약품은 폐암 치료제 올리타정을 조건부 허가제도를 통해 올 5월 판매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판매 허가 1개월 전인 지난 4월에 올리타정을 복용한 뒤 중증 이상반응을 일으켜 사망한 환자가 보고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약 부작용 사례가 보고됐는데 신속허가를 내주는 것이 적절했나’ 하는 안전성 논란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