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라이프

[서울경제 休] 분단과 마주한 길...통일을 꿈꾸는 길

■경기도 김포 평화누리길

DMZ 생태지역과 유적 연결한 트레킹코스

마을안길·논길·해안철책 따라 걷다 보면

덕포진·국제조각공원·매화미르마을 등

초록 벗고 秋色 내려앉은 풍광이 한가득

평화누리길은 DMZ와 접경한 생태 지역, 역사 관광지를 연결하는 안온한 트레킹 코스다.평화누리길은 DMZ와 접경한 생태 지역, 역사 관광지를 연결하는 안온한 트레킹 코스다.


‘평화누리’라는 이름이 붙은 길에 평화는 애당초 없었다. 긴장과 정적만이 감돌고 있을 뿐이다. 그 길을 따라 걷는 관광객들의 발길은 이 땅의 평화를 갈구하지만 길 주변에는 철책과 군부대, 지축을 뒤흔드는 자주포의 굉음이 넘쳐나고 있다. 당면한 현실이야 어쨌든 평화누리길은 비무장지대(DMZ)와 접경한 생태 지역, 역사 관광지를 연결하는 안온한 트레킹 코스다. 마을안길, 논길, 제방, 해안 철책, 한강 하류 등에 이미 나 있던 도로를 활용, 자연 친화적 관광을 목적으로 조성한 길이라는 게 브로셔에 적혀 있는 주장이다. 설명에 따르면 ‘환경훼손을 최소화하자’는 취지에 따라 2011년부터 2012년까지 13개 구간을 조성했으며 2013년에는 김포·연천·철원·양구 등 4개 코스를 추가했다. 북한의 핵 도발에 따라 강 대 강으로 치닫는 현실에서도 시나브로 가을이 내려앉고 있는 평화누리길 경기도 김포 구간을 찾아보았다.

평화누리길 김포 구간의 첫번째 코스는 초지대교 인근 대명항에서 시작한다. 15년 전 대명항은 논이 끝나는 지점에 바닷물을 끌어대 새우를 양식하는 황량한 포구였다. 하지만 다시 찾은 대명항은 요란한 트롯 음악 소리에 수십개의 횟집들이 모여 각종 횟감과 대하구이를 팔고 있었다. 대명항 한쪽 편에 있는 함상공원은 52년간 해병을 실어나르다 퇴역한 상륙함인 운봉함 위에 안보 관련 콘텐츠를 전시해놓고 있다. 이곳 바로 옆에서 시작하는 평화누리길 1코스인 염하강철책길에는 덕포진이 있다.


사적 292호인 김포 덕포진은 1679년(숙종 5년) 바다 건너편 강화의 광성보·덕진진·용두돈대와 함께 축성된 진지로 서울을 공략하기 위해 상륙하는 적을 방어하는 전략 요충이었다. 덕포진은 축성 목적에 따라 병인양요 때는 프랑스 함대와, 신미양요 때는 미국 함대와 각각 전투를 치렀던 진지로 옹벽을 쌓아 총구를 설치한 돈대가 바다를 향해 정렬하고 있다. 김포시 대곶면 덕포진로 103번길 130.

강화도와 김포를 가르는 해협인 염하를 따라 20분가량 차를 달리면 김포시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오르는 김포국제조각공원이 자태를 드러낸다. 김포시가 지난 1998년 문수산 기슭에 조성한 이 공원은 통일이라는 주제로 제작된 국내외 저명 작가의 조각 30점이 2.5㎞ 산책로 주변을 장식하고 있다. 프랑스 출신의 다니엘 뷔렌은 ‘숲을 지나서’라는 작품을 숲길에 설치해놓았다. 그는 잇따라 세워진 문에 그려 넣은 33개의 줄을 통해 독립선언문에 이름을 올린 민족대표 33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동행한 이승남 해설사는 “작가는 통일에 대한 염원을 입구의 오렌지 색 무늬로 표현했다”며 “출구 쪽의 청색 줄무늬로 통일된 그날의 희망을 상징하는 이 작품은 주변 환경과의 조화 및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해설사가 지나친 작품에 눈길이 갔다. 한국 작가 조성묵이 돌을 깎아 만든 ‘메신저’라는 작품은 주인이 떠나버린 다섯개의 의자를 통해 ‘우주만물은 음양오행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동양사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의 속내야 어찌 됐건 단단한 화강암에 물광을 내 깎아놓은 빈 의자의 모습은 설명이 필요 없는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월곶면 용강리 13번길 38. www.garden.fg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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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가 지키는 애기봉을 도보로 출발해 숙소인 매화미르마을로 향했다. 내린다던 비는 기별이 없고 파란 하늘에 작렬하는 태양 탓인지 10월이 무색할 정도로 날씨가 더웠다. 일행이 걷는 논두렁길 양쪽으로 수확이 끝난 논은 온통 초록색이다. 더운 날씨 탓에 낫에 잘린 벼 밑단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은 이모작이 가능한 열대의 동남아를 떠올리게 했다.

근처 평야의 목을 축여 주는 조강저수지 둘레에는 수십명의 태공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밤낚시의 손맛을 기다리고 있다. 저수지 오른쪽 야산 너머 지척에 적군이 있다는데 이곳에 낚시를 온 이들은 전쟁이라고는 안중에도 없이 수면 위에 서 있는 찌의 미동만을 감시하고 있다.

매화미르마을에 도착하자 이미 해는 기울어 땅거미가 내렸다. 졸린 대지 위에 캠핑을 나온 가족들의 저녁 준비를 위한 손놀림이 분주했다. 하루 종일 걸은 탓에 무거운 몸은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이튿날 새벽 습기에 찬 공기를 가르고 들리는 대남방송과 이 소음을 맞받아치는 대북방송만이 이곳이 접전지역이라는 것을 일깨우고 있었다. /글·사진(김포)=우현석객원기자

사적 292호인 덕포진은 1679년(숙종 5년) 강화의 광성보·덕진진·용두돈대와 함께 축성된 진지로 한양을 공략하기 위해 상륙하는 적을 방어하는 전략 요충이었다.사적 292호인 덕포진은 1679년(숙종 5년) 강화의 광성보·덕진진·용두돈대와 함께 축성된 진지로 한양을 공략하기 위해 상륙하는 적을 방어하는 전략 요충이었다.


김포국제조각공원에 전시된 작품 ‘메신저’. ‘의자는 우리가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자리를 의미하며 통일의 그날이 올 때까지 주인을 기다리는 빈자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의 메신저를 상징한다’고 적혀 있다.김포국제조각공원에 전시된 작품 ‘메신저’. ‘의자는 우리가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자리를 의미하며 통일의 그날이 올 때까지 주인을 기다리는 빈자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의 메신저를 상징한다’고 적혀 있다.


조강저수지 둘레에는 수십명의 태공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밤낚시의 손맛을 기다리고 있다. 저수지 오른쪽 야산 너머 지척에 적군이 있다는데 이곳에 낚시를 온 이들은 전쟁이라고는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다.조강저수지 둘레에는 수십명의 태공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밤낚시의 손맛을 기다리고 있다. 저수지 오른쪽 야산 너머 지척에 적군이 있다는데 이곳에 낚시를 온 이들은 전쟁이라고는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다.


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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