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시끄러워지고 있는 미국 대선판에 러시아 변수까지 불거졌다. 이례적으로 국토안보부와 국가정보국(DNI)이 직접 나서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을 공식적으로 언급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미 국토안보부와 DNI는 지난 7일(현지시간) 민주당 e메일 해킹 사건 수사 결과를 공동 발표하고 “이들 절도와 폭로는 미 대선 과정에 개입하기 위한 의도였다”면서 “러시아가 여기에 개입했다”고 밝혔다. 미 안보에 관한 정부 내 주무 부처와 정보기관이 미국에 대한 사이버 공격과 내정 간섭의 주범으로 러시아를 공개적으로 지목한 것이다. 두 기관은 이어 “이들 행위의 범위와 민감성을 고려할 때 러시아의 최고위 관리들만이 이러한 행동을 승인할 수 있었을 것으로 우리는 믿는다”고 강조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사실상 이번 사건에 개입했음을 시사했다. 그러면서 “미 정보당국은 러시아 정부가 미국인과 정치단체를 포함한 미 기관의 e메일 손상을 지시했다고 확신한다”면서 “러시아는 유럽과 유라시아에 걸쳐서도 여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유사한 전략과 기술들을 사용해왔다”고 주장했다. 미 정부의 이같이 단호한 태도는 미 대선에 관한 러시아의 개입 의도를 역이용하면서 향후 러시아에 강력 대응할 명분을 쌓는 것으로 미 언론들은 분석했다.
특히 미 정보당국의 이번 발표는 대선 표심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설(說)로만 돌던 ‘러시아의 미 대선개입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대선 한 달을 앞두고 표심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음담패설 녹음 파일 공개로 벼랑 끝에 몰린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게는 커다란 악재가 된 셈이다.
앞서 지난 7월22일 폭로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는 민주당전국위원회(DNC) 지도부 인사 7명의 e메일 1만9,252건 등을 웹사이트에 공개하면서 미국 대선판은 크게 출렁였다. 공개된 메일에는 DNC 지도부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유리하도록 경선을 편파진행한 것으로 의심되는 내용이 다수 포함됐으며 파장은 데비 와서먼 슐츠 DNC 의장 사퇴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러시아가 자국에 우호적인 공화당 대선후보 트럼프의 당선을 돕기 위해 해킹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미 정보당국이 수사에 나섰다.
한편 러시아는 미국의 주장에 강력히 반발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인테르팍스통신에 “또 이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한다”며 미국을 맹비난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의 웹사이트에 매일 수만 개의 해킹 사례가 확인되는데 대다수가 미국에서 이뤄진 것이었다”며 “그렇다고 우리가 그때마다 백악관이나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비난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