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가시간 자전거를 즐겨 타는 정상구(30·가명)씨는 얼마 전 한강 성산대교 인근에서 아찔한 경험을 했다.
맞은 편에서 50대 남성이 술에 취한 채 자전거를 타고 오다 자신과 충돌할 뻔했기 때문이다. 정씨는 “자칫 사고가 났으면 크게 다쳤을 것”이라며 “만취 상태로 주행하는 이들이 많아져 걱정”이라고 말했다.
자전거 열풍이 일면서 술을 마신 채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9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자전거 사고 건수는 1만8,310건으로 전년 대비 4.8% 증가했다. 그중 음주 자전거 운전자가 가해자로 분류되는 사고는 5,975건에서 6,920건으로 15% 이상 늘었다. 실제 ‘자출사’ 등 취미로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음주 자전거 사고 사례가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지난 4일 서울경제신문 기자가 찾은 원효대교 인근 자전거 도로와 반포대교 인근 편의점에는 자전거를 옆에 세워두고 삼삼오오 술자리를 갖는 40∼50대 남성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문제는 이들을 단속할 만한 법적 근거가 없어 경찰과 지자체 등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현 도로교통법 제50조 8항은 ‘자전거 운전자는 술에 취한 상태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에서 자전거를 운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처벌 규정이 아니라 훈시규정에 불과한 상황. 이에 따라 실질적인 자전거 음주 운전을 단속할 법적 근거는 없다.
전문가들은 현 도로교통법 조항 중 음주 단속 근거 조항을 넣는 방식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2012년 19대 국회에서 자전거 음주운전에 벌금을 물리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통과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또 정부도 2월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제8차 국민안전 민관합동회의’에서 자전거 음주운전에 20만원 이하 벌금이나 과료, 구류 처벌조항에 대한 신설 의지를 밝혔지만 단속 인력 문제와 일부 지역의 반발로 이마저 가로막힌 상태다.
신희철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전거는 운전자 스스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자동차보다 음주운전이 치명적”이라며 “관련 단속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선진국의 경우 엄한 처벌을 내리고 있다. 일본은 음주 상태로 자전거 운행을 한 사람에 대해 최대 5년 이하 징역이나 100만엔(약 1,073만원)의 벌금을, 프랑스는 최대 750유로(약 93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독일은 자전거로 음주운전을 한 경우에도 자동차 면허를 정지하거나 취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양사록기자·김영준 인턴기자 saro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