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정글의 현실

이순우 저축은행중앙회장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을 나도 모르게 집중해서 볼 때가 있다. 영상 속 모습이 우리 현실과 너무 닮아서다. 정글에서는 사자가 사냥한 먹이로 배를 채우고 나면 사자 주변에서 눈치를 보며 배회하던 하이에나와 독수리가 달려들어 남은 먹이를 먹는다. 그런데 가끔은 굶주림에 지친 하이에나들이 무리 지어 다가가면 사자가 오히려 위협을 느끼고 먹이를 남긴 채 자리를 떠난다. 맹수의 왕인 사자라 하더라도 생존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드는 하이에나 앞에서는 꼬리를 내려야 하는 게 정글의 현실이다.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강자가 언제까지나 강자일 수는 없다. 대기업이라도 과거의 경영방식을 탈피하지 못하고 변화하는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필자가 항상 강조하는 것이 ‘변화하지 않는 것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라는 말이다. 변화란 외부 환경과 조직 사이에 균형을 잡아나가는 끊임없는 과정이다. 따라서 변화를 수용하는 능력이 곧 기업 경쟁력의 척도가 된다.


실제로 우리는 IMF와 외환위기를 겪으며 급변하는 환경에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국내 거대 기업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는 것을 봤다. 대부분 구조적인 비효율성과 부실한 재무구조 등으로 강제 퇴출 됐으며 앞으로도 시장은 냉정한 경쟁원리를 적용하면서 적자생존의 원칙을 고수할 것이다. 급속한 환경변화는 금융시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성숙단계에 진입하면서 각종 규제 완화와 금융 통합화로 인해 치열한 영업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미 외국계은행·보험사·자산운용사들이 견고히 자리를 잡았으며 국경 제한 없이 고객을 찾아다니는 국제경쟁 시대가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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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형성장에 치우친 국내 금융기관들이 경영효율 및 수익 저하로 인해 곤경에 처한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저축은행 역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사태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었다. 하지만 실패했다고 해서 주저앉으면 안 된다. 저축은행은 뼈아픈 실패를 교훈 삼아 많은 변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관계형 금융의 도입이다. 관계형 금융이란 고객과의 지속적인 거래·관찰·현장방문 등을 통해 객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비재무적 정보를 대출 평가에 포함하는 것이다. 계량적 요소만을 평가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잠재력을 갖췄지만 아직 재무적 성과를 창출하지 못한 유망 중소기업들이나 스타트업 기업들이 자금을 지원받는 데 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관계형 금융 도입 이후 중소기업은 담보나 신용이 부족하더라도 사업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됐고 저축은행은 성장성 있는 기업에 대한 새로운 대출 수요를 발굴할 수 있게 됐다. 기업과 저축은행이 동반성장 하는 파트너가 된 것이다. 저축은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도 기존 금융사가 제공하지 못하는 금융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발굴할 예정이다. 대출이 쉽지 않은 서민과 중소기업의 금융 편의를 도모해 서민금융 지킴이 역할을 다하고 틈새시장을 공략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고 치열한 금융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기존의 질서와 관행을 따르는 것이 편하고 안전하다’는 생각은 크나큰 착각이다. 과거를 냉정하게 평가해 잘못된 것은 과감히 잘라내고 미래를 예측해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기업의 자세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죽은 것이고 이것이 정글의 현실이다.

이순우 저축은행중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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