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초 CJ제일제당(097950) 트렌드전략팀에 특명이 하나 떨어졌다. 만두 비수기인 여름을 앞두고 ‘비비고 왕교자’의 매출을 끌어올릴 마케팅 전략을 찾으라는 임무였다. 20명의 팀원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흩어진 빅데이터를 수집·분석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보름가량 지나자 5억건에 달하는 정보가 모였고 의외로 무더운 여름밤에 맥주 안주로 만두를 먹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발견했다. 올여름 식품 업계에서 가장 성공한 마케팅 중 하나로 꼽히는 CJ제일제당의 ‘왕맥(왕교자+맥주)’ 마케팅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경기침체와 시장포화로 고전하는 식품 업계가 빅데이터를 활용한 마케팅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디지털 세상에 존재하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적재적소에 필요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경쟁사보다 발 빠르게 신제품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점이 빅데이터의 가장 큰 매력이다. 최근에는 식품 업체가 유통 업체와 손을 잡거나 제품이 아닌 생산공장에 빅데이터를 적용하는 등 빅데이터 열풍이 식품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 2013년 마케팅 전담 부서인 마케팅리서치센터를 트렌드전략팀으로 개편하고 빅데이터 인력을 대폭 확충했다. 개편 초기만 해도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의 게시판을 살펴보거나 홈페이지 회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매달 수억건의 빅데이터를 분석해내는 핵심 부서로 자리 잡았다.
트렌드전략팀이 발굴한 첫 빅데이터 마케팅은 디저트 브랜드 ‘쁘띠첼’의 신제품 출시를 맞아 선보인 ‘피곤한 월요일 2시16분, 푸딩하자’였다. 당시 SNS에서 6억건의 빅데이터를 수집한 결과 쁘띠첼의 주 소비층인 여성들이 월요일 오후2시16분에 피곤함을 제일 많이 표현한다는 것을 찾아냈다. 빅데이터 마케팅이 더해진 쁘띠첼은 연매출 1,500억원을 올리는 주력 브랜드로 올라섰다.
왕맥 마케팅 역시 빅데이터를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통상 냉동식품은 비수기인 여름철에 판매량이 뚝 떨어지지만 비비고 왕교자는 올여름 예년보다 2배 이상 매출이 늘어나는 기염을 토했다. 왕맥 마케팅의 일환으로 진행한 간장소스 무료증정 이벤트 역시 한때 품귀 현상을 빚는 등 화제를 모았다. 왕맥 마케팅이 성공을 거두면서 비비고 왕교자는 올 상반기에만 올해 목표 1,000억원의 절반이 넘는 55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베이커리 전문점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그룹은 2012년 날씨를 빅데이터로 분석한 ‘날씨판매지수’를 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날씨판매지수는 날씨에 따른 제품별 판매율을 나타내는 지수로 SPC는 전국 169개 매장의 5년치 날씨와 매출의 연관성을 통계기법으로 추출했다. 기온이 27도 이상인 날에는 샌드위치 판매량이 10% 늘고 피자빵은 20도 전후에 가장 많이 팔린다는 게 대표적이다. 날씨판매지수를 통해 파리바게뜨는 재고물량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매출도 덩달아 늘어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한국야쿠르트가 올 4월 출시한 ‘얼려 먹는 야쿠르트’도 빅데이터를 만나 탄생했다. 한국야쿠르트 마케팅팀은 각종 인터넷 블로그와 카페에서 30대 네티즌들이 “어린 시절에 야쿠르트를 거꾸로 얼려 먹었다”는 이야기를 꾸준히 한다는 점에 착안해 아예 용기가 거꾸로 된 신제품을 내놓았다. 이 제품은 출시하자마자 화제를 모으면서 하루 평균 20만개씩 팔리는 히트 상품에 등극했다.
빅데이터 마케팅은 이색 아이디어를 접목한 협업 상품으로도 진화하고 있다. 오리온이 지난달 선보인 감자 스낵 ‘스윙칩 오모리김치찌개맛’은 편의점 GS25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GS25가 고객 매출을 빅데이터 기법으로 분석한 결과 자사 인기 상품인 ‘오모리 김치찌개라면’을 구입하는 20대 여성이 오리온 ‘스윙칩’도 함께 구입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동원F&B(049770)도 빅데이터를 활용해 경쟁사와 손을 잡는 파격적인 시도에 나섰다. 앞서 출시한 ‘자연&자연 동원 골뱅이’는 대상 청정원의 양조간장을 넣어 만들었고 팔도와 손잡고 출시한 ‘동원참치라면’은 라면과 참치를 같이 먹는 소비자들이 많다는 점을 겨냥해 개발했다. 이달 초에는 웅진식품의 인기 음료 ‘초록매실’을 더한 ‘덴마크 드링킹 요구르트 초록매실’까지 내놓았다.
스타벅스가 2014년 전 세계 매장 중 가장 먼저 한국에 선보인 모바일 주문 서비스 ‘사이렌 오더’도 빅데이터의 역할이 컸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대기시간 없이 미리 모바일로 주문하고 매장에서 바로 음료를 찾는 것을 선호한다는 점을 파악한 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올 들어서는 모바일 설문 서비스인 ‘마이 스타벅스 리뷰’를 통해 실시간으로 고객의 평가와 의견을 수집해 신제품 출시와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고 있다.
국순당이 지난달 내놓은 크림치즈 막걸리 ‘국순당 쌀 크림치즈’도 빅데이터 효과를 톡톡히 봤다. 국순당은 기존에 출시된 과일 막걸리의 주요 고객이 2030세대이고 대다수가 치즈를 선호한다는 점을 파악해 제품개발에 착수했다. 6개월에 걸친 시제품 평가를 통해 빅데이터가 누적됐고 젊은 세대의 입맛을 맞춘 제품으로 탄생했다. 국순당은 크림치즈 막걸리가 매운 음식과도 궁합이 잘 맞고 외국인에게도 거부감이 없어 해외시장 공략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매일유업(005990)이 업계 최초로 출시한 ‘맘마밀 스푼’도 빅데이터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 앞서 파우치 용기를 채택해 휴대성과 편의성을 높인 ‘맘마밀 안심이유식’을 선보인 뒤 구입 고객을 대상으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전용 숟가락이 있으면 좋겠다는 결과를 얻었다. 맘마밀 스푼을 활용하면 한 손으로도 아기에게 이유식을 먹일 수 있어 주부들의 호평이 잇따르고 있다. 매일유업은 7월 미래창조과학부가 주관하는 ‘빅데이터 활용 스마트 서비스 시범사업자’에도 선정됐다. 빅데이터를 생산공장에 적용해 불량률을 30% 줄이고 생산성과 에너지효율성을 10% 이상 끌어올리는 이른바 ‘스마트 공장’을 구현하겠다는 목표다.
남성호 CJ제일제당 트렌드전략팀장은 “빅데이터 분석을 잘 활용하면 기존에 길게는 1년이 걸리던 자료수집을 1주일로 단축할 수도 있다”며 “고객 자신도 알지 못하는 콘텐츠를 발견해 신제품을 개발하거나 마케팅에 적용하는 게 핵심 경쟁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