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이슈 & 워치] 위기의 기업...결국 '품질'로 이겨냈다

LGD·효성 등 위기 상황 때

고품질 제품으로 고비 넘겨

삼성 등 '기술저력' 보여줘야

1315A01 ‘품질의 힘’으로 위기 극복한 기업들1315A01 ‘품질의 힘’으로 위기 극복한 기업들




지난 2005년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 액정표시장치(LCD) 품질 문제가 여러 차례 발생하면서 이 회사는 물론 그룹 전반에도 위기감이 번졌다. 당시 대표였던 구본준 부회장은 전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불량 LCD패널을 지게차로 부수라고 지시했다. “고객에게 불량품은 절대 줄 수 없다”는 오너 일가 경영진의 품질 경영 의지는 LG디스플레이가 오늘날 글로벌 1위에 오르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LG그룹 핵심 관계자는 “품질 불량으로 위기에 처한 상황을 종국에는 ‘품질’로 이겨낸 셈”이라고 회상했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단종 선언과 현대자동차의 세타Ⅱ 엔진 문제로 대한민국 양대 대표기업이 위기에 처한 가운데 ‘품질의 힘’으로 고비를 넘긴 기업들의 상황이 다시 한번 조명받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중국 업체들의 난립과 물량 공세로 인한 공급과잉으로 국내 스판덱스 업체들은 줄줄이 도산 위기에 처했다. 효성 역시 3년 후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조석래 효성 회장은 2006년 신년사에서 “효성이 추구하는 변화의 방향은 단연코 품질경영을 근간으로 해야 한다”며 그룹의 경영철학을 ‘고품질 제품’으로 바꾸도록 지시했다. 효성은 이후 고기능성 제품 개발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했고 올해 사상 첫 영업이익 1조원을 내다보며 세계 1위에 올라섰다. 3면에서 계속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1면에서 계속

전문가들은 삼성전자 역시 갤럭시노트7의 위기상황을 결국 ‘품질’로 이겨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트7의 홍채인식 등 차별화한 기술을 뛰어넘는 ‘독보적 기술’을 품은 ‘노트8’을 만들어 시장에 ‘삼성 기술적의 저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현대차가 이날 국내에서 세타Ⅱ 2.4GDi 및 2.0터보GDi 엔진을 장착한 차량의 엔진 보증기간을 기존 5년 10만㎞에서 10년 19만㎞로 연장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미래 스마트카 개발을 위해 올해 신설한 ‘차량지능화사업부’를 통해 전파차단·도청방지 등 프라이버시 보호차량을 첫 작품으로 내놓은 것은 주목할 만하다. 현대차는 정몽구 회장이 1999년 이른바 ‘그레이스 슬라이딩도어 사건’ 이후 전사적 품질경영을 선언한 후 신차품질지수에서 지난해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4위(JD파워)까지 올라섰다.

1315A03 품질경영효성1315A03 품질경영효성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오늘의 삼성전자를 있게 한 1995년 ‘휴대폰 화형식’ 직후 “불량제품은 암과 같다”며 “위궤양은 회복될 수 있지만 암은 더욱 진화한다. 초기에 잘라내지 않으면 3~5년 뒤 온몸으로 전이돼 사람을 죽인다”고 품질지상주의를 주창했다. 그의 말처럼 최근 기업경영에서 품질은 기업의 가장 기본적인 힘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측면에서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 단종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처했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전사적 지휘 아래 차별화를 이루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품질로 정면 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 이동통신사 스프린트의 마르셀로 클라우드 최고경영자(CEO)는 “위대한 제품을 생산하면 브랜드 가치는 회복된다. 이번 사태가 삼성에 치명적이지는 않다”고 말했다. 현영석 한남대 교수는 ‘현대차와 도요타의 품질위기와 극복’이라는 논문에서 “최고경영자가 이끄는 전사적 품질조직 구축이 품질 문제 해결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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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들의 품질 집착, ‘대한민국 대표기업’ 만들었다=현대·기아차의 ‘그레이스 슬라이딩도어 사건’은 현대차를 ‘2류기업, 세컨드카를 만드는 기업’에서 일류로 전환시킨 결정적 계기였다. 1999년 당시 현대차 울산공장을 방문한 정 회장이 생산라인을 둘러보다 조립이 끝난 승합차 그레이스의 슬라이딩도어를 20여차례 힘껏 여닫자 문짝이 슬라이딩레일에서 이탈했다. 이에 정 회장은 경영진에게 “처음부터 제대로 다시 만들라”고 지시했다. 정 회장은 같은 해 세계 자동차의 본고장 미국에서 품질을 강조하는 ‘10년 10만마일 워런티(보증수리)’로도 승부수를 띄웠다.

이건희 회장의 ‘휴대폰 화형식’은 품질로 1등 삼성의 기틀을 닦은 상징적 사례다. 1994년 삼성전자는 야심 차게 무선전화 애니콜을 출시했지만 초기 모델이라 제품 불량률이 11.8%에 달했다. 이 회장은 이듬해 1월 불량품을 모조리 수거해 새 제품으로 바꿔주라고 지시했다. 수거된 불량 무선전화 15만대는 구미사업장 운동장에 차곡차곡 쌓였다. 당시 시가로 500억원어치에 해당하는 물량이었다. 임직원 2,0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선전화를 해머와 불도저로 산산조각내고 부서진 무선전화기를 태우는 화형식을 집행했다. 그해 8월 애니콜은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시장 1위에 올라섰고 갤럭시 신화 역시 이런 아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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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앤드존슨에서 배워라=미국 존슨앤드존슨사는 위기를 기회로 바꿔 1위 기업으로 도약한 대표적인 사례다. 1982년 미국에서 누군가가 타이레놀에 청산가리를 주입해 이를 복용한 7명이 사망했다. 존슨앤드존슨은 타이레놀 캡슐이 든 병 3,100만개를 모두 수거하고 고객에게 제품을 무료로 교환해줬다. 당시 리콜 사례가 거의 없었던 만큼 이례적인 조치라는 평가를 받았다. 사건이 해결된 뒤 당시 존슨앤드존슨 회장이었던 제임스 버크는 “더 이상 캡슐 제품이 소비자들의 안전성을 보장하지 못하고 회사 입장에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며 타이레놀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이물질이 투입될 수 없는 새로운 포장 개발을 지시했다. 얼마 안 가 존슨앤드존슨은 시장점유율 1위 기업으로 도약했고 오늘날 윤리경영의 모범기업으로 꼽히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의 위기상황을 품질로 돌파하는 국내 기업들은 주목할 만하다.

한화케미칼은 주력제품이 전 세계적 공급과잉에 빠지자 제품을 업그레이드해 위기돌파를 시도했다. 폴리염화비닐(PVC)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범용제품을 줄이고 염소화PVC나 코폴리머(CP)·테르폴리머(TP) 같은 고부가 PVC의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한화케미칼은 울산에 연산 3만톤 규모의 CPVC 공장을 지어 내년 초부터 상업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건축자재로 쓰이는 일반 범용제품과 구분되는 특수시장을 뚫어 생산과잉 시장에서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다.

위기상황은 아니지만 대표가 직접 나서 품질경영을 강조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 등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품질 같은 ‘기본’에 더 충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박동문 코오롱인더스트리 사장은 최근 품질경영 올인을 선언했다. 박 사장은 지난달 임직원에게 보낸 CEO 레터에서 “품질은 기업 경쟁력의 시작이자 끝”이라며 품질경영이 최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오롱측은 “품질혁신 프로그램이 도입된 후 고객 클레임이 전년 대비 10% 줄었다”고 밝혔다. 박진수 LG화학 부회장도 6월 임직원들에게 “내가 생산하는 제품의 품질이 곧 LG화학을 대표한다는 장인정신을 가슴에 품고 품질의 대명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나가야 한다”고 품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김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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