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고객'을 볼모로 잡은 사립유치원

사회부 김민형 기자

유치원 원아 선발 때 ‘탁구공 추첨’의 번거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교육부가 다음달에 도입하기로 한 온라인 유치원 입학·선발 시스템 ‘처음학교로’가 일부 사립유치원장들의 반대로 시작도 전에 삐걱거리고 있다. 유치원 추첨 때문에 굳이 휴가를 내지 않아도 될 것으로 기대했던 학부모들은 혼란에 빠졌다.

일부 사립유치원장들이 내세운 표면적인 이유는 시스템 불안이다. 개별 유치원들의 특성과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변수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과연 그럴까. 교육부는 지난 5월부터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전문가, 유치원 관계자들과 수차례 협의를 거쳤다. 허수 과열경쟁을 우려해 지원 유치원 수를 3곳으로 제한한 것, 유치원 서열화를 방지하기 위해 경쟁률 등을 비공개하기로 한 것 등이 그 결과물이다. 현재는 시스템 검증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혹시 모를 문제점을 보완하고 있다. 사립유치원들이 시스템 개발에 참여했고 앞으로도 보완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속내를 좀 더 들여다보면 민낯이 드러난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등 유치원 단체들이 실제로 가장 우려하는 것은 국공립유치원에 비해 확연히 떨어지는 일부 사립유치원에 대한 학부모 선호도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실제 서울 국공립유치원들은 매년 입학정원보다 지원생이 많아 치열한 경쟁을 벌이지만 사립유치원은 다르다.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춰 인기를 끄는 250곳가량을 제외하면 400여곳은 정원 미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유총 관계자는 “국공립유치원은 정부 지원을 받아 학부모들이 내는 추가 비용이 거의 없다 보니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대부분의 사립유치원이 원아가 부족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처음학교로를 도입하면 양극화 현상이 더 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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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학부모들이 외면해 경영이 어려운 일부 사립유치원을 보호하기 위해 처음학교로 도입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각고의 노력과 다양한 투자로 경쟁력을 높여 학부모들의 사랑을 받는 국공립 및 사립유치원들의 노고에 대한 모독이다. 또 비용 때문에 학부모들이 국공립유치원을 선호한다는 주장도 국공립과 일부 사립유치원의 교육환경과 질을 비교하면 과장됐다. 국공립유치원은 사립유치원과 달리 아이들이 먹는 음식만큼은 믿을 수 있다는 학부모들의 얘기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 않은가.

시장경제에서 경쟁력을 잃은 기업들은 사라진다. 물론 유치원은 기업이 아니고 아이들의 보육과 교육을 책임지는 사회적 자산이기 때문에 시장논리를 그대로 들이대기는 무리다. 그렇다고 경쟁력이 부족해 학부모들이 외면하는 유치원을 위해 학부모들의 편의가 희생돼야 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일부 사립유치원들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볼모로 잡고 있는 학부모는 그 유치원의 ‘고객’이다. 고객들은 자신에게 불편을 끼치는 기업이나 상품을 반드시 기억하고 다음에는 이용하지 않는다.

kmh204@sedaily.com

김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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