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여름 어느 날 아침. 평소 행복이라는 주제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독일인 마이케 반 덴 붐씨는 커피를 한 잔 들고 신문을 읽고 있었다. 이때 마이케씨의 눈길을 확 잡아끄는 기사가 하나 있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4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삶의 질 보고서’였다. 독일의 행복지수가 멕시코나 아이슬란드보다 낮다고? 마이케씨는 가난과 폭력·부패 같은 심각한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멕시코나 지진·추위가 일상화된 아이슬란드보다 독일의 행복지수가 낮다는 것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후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마이케씨의 여정이 시작됐다. OECD 국가를 비롯해 행복지수가 높은 13개 국가를 직접 찾아가 행복의 비결을 탐색했다. 이 여정에는 덴마크와 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 등 북유럽의 잘사는 나라뿐만 아니라 멕시코·코스타리카·파나마·콜롬비아 등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나라들도 포함됐다. 나라들은 다양했지만 마이케씨가 찾아낸 행복의 비결은 비슷했다. ‘신뢰, 가족과 친구, 조화, 배려, 자유, 여유, 소소한 일상’ 등. 이러한 정서는 더운 열대지방도 황량한 북쪽 나라도 다르지 않았고 경제 수준이나 문화의 차이도 없었다.
이 같은 기준을 놓고 보면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일까.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지금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행복보다는 불신과 갈등·자살 등 부정적인 단어들이 먼저 눈에 띈다. 실제로 올해 OECD가 발표한 삶의 질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34개국 가운데 28위에 그쳤다.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8.7명으로 OECD 평균(12명)의 두 배를 훌쩍 넘으면서 압도적인 1위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러니 거리에서는 웃음보다는 분노의 얼굴이 쉽게 눈에 띈다.
우리나라는 왜 행복하지 못한 것일까. 삶의 지표들만 봐도 썩 좋을 일이 없다. 일과 삶의 균형 부문은 38위로 OECD가 조사한 국가 가운데 꼴찌이고 고용률도 선진국 평균에도 못 미치고 있다. 최근 조선 등 주력업종의 구조조정과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폭발 사태, 현대자동차의 파업 등이 겹치면서 청년 취업률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은행에서는 내년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을 2.8%로 낮춰 잡은 실정이다.
경제사정이 안 좋아지면 삶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행복이 경제적인 요인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코스타리카 등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도 행복지수는 높다는 사실이 이를 잘 설명한다. 북유럽을 비롯한 행복한 나라들을 보면 경제 상황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 모습이다. 실제로 아이슬란드는 2008년 금융위기로 국가 부도 사태까지 갔지만 국민들의 행복감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경제가 아니라면 뭐가 행복을 좌우하는 것일까.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의 공통점은 신뢰나 가족과 같은 소소한 가치들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다른 사람을 신뢰하는 비율은 26.6%로 OECD 평균(36%)보다 10%포인트나 낮고 정부에 대한 신뢰도 28%로 스위스(77%)나 룩셈부르크(68%), 노르웨이(65%) 등 북유럽 국가들보다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낮다. ‘어려울 때 의지할 누군가가 있다’는 응답은 72%로 OECD 평균(85%)보다 한참 못 미친다.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다 보니 갈등과 대립만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만 해도 그렇다. 진보와 보수 두 이념의 진영으로 갈라져 싸움만 벌일 뿐 사안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찾아볼 수가 없다. 진영이 다른 사람의 주장은 아예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사회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다. 이럴 때일수록 상호 신뢰와 가족, 배려 등 소소한 가치들이 널리 퍼지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얼굴에 행복의 웃음꽃이 활짝 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기를 쓰고 잘살려고 하는 것도 결국은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닌가. /cso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