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도시] 차분하게 슬픔 다독이는 … '서울 추모공원'

화장시설은 복잡하고 시끄럽다. 오열하는 유가족이 있는가 하면 저 구석에서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 사람도 보인다. 한쪽 곁에서는 화장 시간을 기다리는지 TV를 보는 사람도 있다. 건물 바깥 구석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고 식당에서 밥을 먹는 사람도 섞여 있다. 인간이 마지막으로 거쳐 가는 성(聖)스럽고 의미를 부여할 공간이 아닌 어찌 보면 공장이나 시장과 같다.

‘서울 추모공원’은 화장장이다. 하지만 굳이 ‘공원’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더라도 이곳을 한번이라도 둘러보면 우리가 지금껏 겪어온 화장터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 ‘감정의 뒤섞임’을 막기 위한 공간적 배려

예식 위한 공간과 휴식·기다림의 장소 분리

불투명한 유리로 타인과 마주침 없도록 배려



운구가 도착하는 1층 내부에 들어서면 건물은 적막할 정도로 조용하다. 간간이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사람의 모습조차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예식을 앞둔 유족들이 단순히 슬프다는 느낌보다는 경건하면서도 절제되고 정제된 감정이 건물 내부를 감싸고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한다. 사람마다 죽음을 대하는 감정이 다르기 때문에 ‘타인’의 정서가 ‘나’의 그것에 영향을 주지 않았으면 하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의 분리는 작가가 설계를 통해 내부 공간을 분리하는 한편 여러 가지 장치를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우선 1층은 예식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으로 고별실과 수골실만 뒀다. 그리고 경건함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카페테리아나 식당 등의 공간은 모두 2층에 배치했다.

또 운구가 처음 도착하는 입구 옆에 있는 내부 유리만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행여 고별실 앞의 다른 유가족들의 모습이 보일까 해서다. 이제 예식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예식을 끝내고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썩 좋은 경험이 아니라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버스가 건물 내부 주차장까지 들어오게 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는 들어오는 사람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는 사람을 위한 장치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건물 내부를 통하는 것이 아니라 선큰 광장을 통해 바로 주차장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건물을 설계한 김태만 해안건축 대표는 “들어오는 사람과 나오는 사람, 유족의 슬픔은 깊겠지만 그렇지 못해 지루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며 “펑펑 우는 분위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고인을 깊이 생각하고 추도하면서 차분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했다”고 말했다.



● 숨어있지만 존재감은 숨기지 않은 건물

위에서 바라보면 지하화된 건축물이지만

언덕사이 자연스런 조각처럼 밖으로 드러나



화장시설은 대표적인 기피시설이다. 그래서 애초부터 서울 추모공원은 지하화를 하겠다는 의도로 설계됐다. 무엇보다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전제조건이었다. 하지만 설계자는 발상을 바꿔 건물에 창조적 변형을 시도했다. 위에서 보면 분명 지하화된 건축물이지만 공원 입구에서 들어오면서 나타나는 건물의 모습은 지상 공원의 아래에 만들어진 단순히 지하주차장과 같은 공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게 만든 것.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숨어 있지만 역설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건물인 셈이다. 김 대표는 “안 보이는 것과 존재감이 없다는 것은 차이가 크다고 생각했다”며 “보이게 되더라도 사람들이 혐오시설이라고 느끼는 부정적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서울 추모공원’은 주변 환경 깊숙이 들어앉아 있으면서도 조각처럼 밖으로 드러난 건물이 됐다. 양옆의 나지막한 언덕 사이에 파여 있는 곳에 건물을 내려놓은 모습이 됐고 건물 양옆은 자연과 경계 짓지 않고 이어지도록 했다. 그래서 한쪽은 경사지를 그대로 두면서 다른 한쪽은 테라스에서 야외공원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모습을 하고 있다. 거친 돌을 켜켜이 쌓아 올린 듯한 외벽 마감도 주변 환경의 연장이라는 느낌을 들게 한다. 김 대표는 “산이라는 자연환경과 조경, 건물 디자인으로 연결되는 경계가 없도록 설계했다”며 “돌벽이 건물의 입면이기도 하지만 그냥 파인 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 경건함을 더한 하늘 연못과 봉송길·나선형의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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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여를 메고 동네 개울가 지나던 모습 연상

불교의 ‘회귀’ 상징하는 1층 지붕도 인상적



건물은 전체적으로 중앙의 하늘 연못 주위를 둥그렇게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입구에 들어서 고별실로 향하기까지 운구는 통유리를 통해 훤히 내다보이는 ‘하늘연못’ 옆을 지나가게 만들었다. 이는 흡사 상여를 메고 동네 개울가를 지나가는 우리의 옛 장례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봉송길’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통로는 운구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해 동선의 혼란을 없애고 가는 동안 감정을 추스르게 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상여를 메고 물가를 지나는 그런 장면을 생각하면서 만든 공간”이라며 “화장장은 건물 내부에 있지만 하늘연못을 통해 눈이 오고 비가 오고 때로는 화창한 하늘을 보면서 정제된 일상을 느끼며 차분해질 수 있었으면 했다”고 설명했다.

2층 창을 통해 보이는 1층 지붕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지붕은 안쪽으로 회전하는 나선형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불교적인 의미의 ‘회귀’를 상징하고 있다. 화장로가 있는 공간 반대편에서 시작된 지붕은 오르락내리락하며 높낮이에 변화를 주고 하늘연못이 있는 중앙으로 모여드는 모습을 하고 있다. 지붕의 폭도 넓어졌다가 화장로가 있는 곳을 향해 좁아진다. 사람들의 시선이 화장로를 향해 모아지도록 만들었고 화장로가 설치된 부분은 더욱 높이를 높게 해 종교시설의 제단과 같이 집중되도록 했다.



■ 설계자 인터뷰 - 김태만 해안건축 대표

“발상을 바꾼 건축물은 언제나 새로운 영감을 주죠”

“설계를 할 때는 항상 좋은 건물을 봅니다. 프랑스의 퐁피두 센터나 일본의 센다이 미디어테크와 같은 발상을 전환한 건물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서울 추모공원을 설계한 해안건축의 김태만(사진) 대표는 건축 설계에는 기존의 지배적인 관념이 아닌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대표가 인상 깊게 본 건축물은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와 일본 센다이시의 센다이 미디어테크다. 퐁피두센터는 내부 구조가 밖으로 노출된 건축물로 유명하고 센다이 미디어테크는 투명한 외형과 강철관으로 구성된 유기체적인 기둥으로 잘 알려져 있다.

김 대표는 “발상의 전환은 기하학적 변형과는 다른 것”이라며 “건축물이라고 하는 것은 건물의 요소와 공간 형태와의 관계를 재해석해 내는 것인데 퐁피두센터나 미디어테크는 그런 고정관념을 바꿔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지고 쓰임새가 나타난 건물”이라고 말했다.

직선 형태의 건축물에서 벗어나 유선형의 새로운 미감을 제시한 세빛섬 등 그가 설계한 많은 건축물에도 이런 노력들이 담겨 있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건축물은 이런 발상의 전환과 함께 예술적 감수성이 담겨 있는 건축물이다. 그는 “건축가는 51대49로 예술가에 가깝다”며 “언제나 예술과 기술의 균형을 찾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주로 공공건축물을 설계해왔다. 그 이유를 공공건축물이 민간보다 조금 더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공공건축은 예산이 넉넉하지 않지만 현상공모 등에서 기존과는 다른 새로움을 요구하는 편”이라며 “건축의 순수성과 명분을 갖고 계신 심사위원들에게 용기를 얻는다”고 답했다

반면 민간 건축물의 경우 정말 기부하는 성격의 건물이 아니면 안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단순하지만 깊이 있고 세밀함이 살아 있는 민간건축물도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희망했다.

그는 ‘서울 추모공원’을 설계하면서 아쉬운 점도 털어놓았다. 화장시설과 함께 납골당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는 “화장시설은 한 번 들렀다 가면 다시 오지는 않는 곳”이라며 “납골당이 있어야 진정한 추모의 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