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서경이 만난 사람] 문형표 "후세대에 떳떳한 연금제도 물려주려면 보험료 인상 불가피"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9% 요율 유지하면 다음세대는 23% 내고 16%밖에 못 받아

동·서독 사회통합 중심축은 연금 통합...남북 통일 대비해야

기금운용본부 공사화보다는 운용委 전문성 확보가 더 시급

대담=이학인 경제정책부장 leejk@sedaily.com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권욱기자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권욱기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는 제일 빠르고 출산율은 가장 낮은 국가입니다. 후세대에 빚을 떠넘기지 않고 떳떳한 연금제도를 물려주려면 이제는 보험료 인상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지난 20일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에서 만난 문형표(59·사진) 이사장은 18년간 묶여 있는 국민연금 보험료의 인상 문제를 논의할 때가 됐다고 역설했다. 그는 지난 2013~2015년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까닭에 인터뷰 내내 정책적인 사안에 대한 언급을 삼갔지만 국민연금의 재정 문제에 관해서 만큼은 소신을 명확하게 밝혔다.

국민연금은 1988년 도입된 후 가입자들이 낸 290조원 정도의 적립금에다 운용 수익금 250조원을 합쳐 540조원의 규모로 성장했다. 규모로는 일본과 노르웨이에 이어 세계 3위다. 2015년 한 해만 놓고 볼 때 보험료 수입액과 운용수익금은 각각 36조원, 21조원에 달한다. 가입자들에게 연금으로 지급된 금액은 15조원이다. 42조원 정도의 흑자가 난 셈이다. 이들 재무지표만 놓고 보면 왜 보험료를 더 내야 하는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00년 고령화 사회에 도달한 한국은 2018년 고령사회, 2026년 초고령사회에 각각 접어든다. 속도는 OECD 회원국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고령화사회에서 초고령사회까지 가는 데 불과 26년이 걸린다. 이는 일본의 35년에 비해서도 9년이나 짧고 프랑스(155년), 미국(87년), 이탈리아(80년), 독일(76년) 등과는 아예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연금 수령 대상자들이 그만큼 빠르게 늘어난다는 것이다. 문 이사장은 “1988년 국민연금이 도입될 당시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정확히 70세였다”며 “올해는 82세인데 연금 수급 개시연령을 60세에서 65세로 올려도 총 수급 기간이 거의 2배로 늘어난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마술사가 아닌 다음에야 보험료 조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 2013년 이뤄진 국민연금 제3차 재정추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은 2044년부터 적자로 돌아서 2060년이면 완전 소진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기금 소진 시기를 그보다 2년 빠른 2058년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금이 소진되면 국민연금은 ‘적립방식’에서 ‘부과방식’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문 이사장은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연금을 못 받는 일은 없다”며 “기금이 소진되더라도 제도는 존속할 텐데 기금이 없는 상태에서 가입자들에게 연금을 주려면 적립방식이 부과방식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경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세계 184위의 극심한 저출산율(1.24명)이다. 문 이사장은 “우리 세대가 현재처럼 보험료를 월 기준소득의 9%만 내 2060년 기금이 소진되면 후세대들은 급작스럽게 23%에 달하는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며 “그들이 23%를 낸다고 하더라도 그 중 상당 부분은 우리가 적게 부담한 것을 메우는 데 사용돼야 하기 때문에 실제 받는 돈은 16%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낸 만큼도 못 받게 된다는 얘기다. 문 이사장은 오는 2018년 장기추계를 내놓을 때 연금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대안을 내놓고 사회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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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이사장은 남북 통일과 관련해서도 국민연금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통일에 대해 예단을 할 수는 없겠지만 하루아침에 북한이 무너져내릴 수 있는 상황이 닥칠 수 있다”며 “동서독 통일에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됐고 그중 가장 많은 비중의 돈이 사회보장에 쓰였다. 통일 비용의 20% 정도가 연금 통합에 사용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독일 통일 비용이 3,000조원에 달했다고 알려지고 있기는 하지만 수많은 학자들은 물론 독일 정부조차도 그 비용이 얼마라고 딱 잘라 말하지는 못한다. 다만 통일 비용의 20% 조금 넘는 돈이 연금통합에 쓰였다는 것 정도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게 국민연금연구원의 설명이다.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권욱기자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권욱기자


국민연금은 연구원을 중심으로 현재 협의체를 만들어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문 이사장은 “통일 독일에서 사회통합의 중요한 축이 연금통합이었던 것처럼 국민연금도 통일에 대비를 해야 할 것”이라며 “독일은 서독의 한 지역이 동독의 한 지역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통합이 이뤄졌는데 우리도 그 모델을 적용할 수 있는지 아니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안을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화제를 우리나라의 심각한 노후빈곤 문제로 돌리자 그는 테이블에 놓여 있던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문 이사장은 “소득대체율(가입기간 평균 소득액 대비 연금액)을 높여 노후 빈곤 문제를 해소해나가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의 소득대체율은 OECD 국가와 비교해 결코 낮지 않으며 설령 소득대체율을 올린다고 하더라도 그 효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 수준으로 OECD 평균(40.6%)과 비슷하다. 소득대체율을 내일부터 당장 50%로 올리더라도 가입자들은 이미 납부한 기간에 대해서는 40%를 적용받아 연금 수급 연령이 돼 받게 되는 급여의 소득대체율은 50%에 미치지 못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문 이사장은 노후빈곤 문제는 소득대체율 인상이 아니라 ‘1인 1연금’과 가입기간 확대로 풀어나가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를 들어 100만원을 받던 사람이 40만원을 받아서는 생활이 안 될 것”이라며 “하지만 부부가 각자 연금을 받아 80만원이 되면 기본생활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득대체율을 올리려면 보험료를 같이 올려야 하는데 소득대체율만 올리자고 하는 것은 포퓰리즘”이라며 “우리가 할 일은 가입기간을 늘려주는 것이다. 선진국들의 연금액이 높은 것은 가입기간이 대부분 30년 이상 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민연금이 아직 어린 나이라 가입기간이 짧아 연금액이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현재 정부는 비정규직·일용직·특수고용 근로자들도 국민연금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보험료의 최대 60%를 지원하는 ‘두루누리’ 사업을 진행 중이다. 또 실직 기간 보험료의 최대 75% 대신 내주는 실업크레딧과 추후납부제도를 통해 실업자와 전업주부 등도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늘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야당 등이 기금을 임대주택 등 공공사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을 펴고 있는 데 대해서는 “국민연금은 정치적 목적에 따라 사용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문 이사장은 “제도를 책임지고 있는 집행기관의 장으로서 두 가지에 유의하고 있다”며 “하나는 수익성·안정성이라는 국민연금의 기본원칙이 어떤 경우에도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점, 다른 하나는 국민연금의 투자처를 결정하는 기금운용위원회의 독립성이 존중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거 우리나라는 물론 캐나다·일본 등도 기금을 정치적 목적에 따라 사용하다가 실패한 이력이 있다”며 “어떤 방식으로든 방화벽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금운용본부의 공사화 문제에 대해서는 공사화보다 기금운용위원회의 전문성 확보가 더 시급한 과제라고 답했다. 위원회는 현재 보건복지부 장관 등 정부대표 6명, 경총 등 추천하는 사용자 대표 3명, 한국노총 등이 추천하는 근로자 대표 3명, 농협중앙회 등이 추천하는 지역가입자 대표 6명, 전문가 2명 등 총 20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는 “그분들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라면서도 “하지만 위원회에서 논의되는 것들이 환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커지는 데 위험 한도를 10%로 할지, 아니면 15%로 할지, 주식투자를 30%로 할지, 아니면 35%로 할지 등 굉장히 전문적인 사안들이다. 이런 건 나도 못한다. 그런데 과연 근로자·가입자단체에서 온 분들이 이런 것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대담=이학인 경제정책부장 leejk@sedaily.com

정리=임지훈기자 jhilm@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임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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