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직장인들의 귀가 시간이 한 시간 이상 앞당겨지고 있다. 4~5년 전만 해도 저녁 7시부터 9시 사이에 1차로 저녁 식사를 하고 2차·3차로 이동하는 일이 다반사였다면 요즘 들어서는 저녁 식사를 8시 전후에 끝내고 각자 집으로 향하는 직장인들이 크게 늘었다. 대신 아침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 근처 카페나 식당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는 ‘아침 외식’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신한카드 트렌드연구소가 최근 5년간 카드 결제 시간대와 사용처를 분석해 파악한 트렌드 변화상이다. 이처럼 수천만 건의 카드 결제 데이터를 분석하면 현상에 대한 인문학적 해석이 가능해지고, 더 나아가 마케팅 전략이나 신상품 개발에도 도움이 된다.
24일 중구 소공로 신한카드 본사에서 만난 남궁설(44) 트렌드연구소장은 “순간순간의 단편적인 정보는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지만, 전체의 흐름에서 빅데이터의 맥락을 읽으면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면서 “트렌드연구소는 카드사가 확보한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미래 사회상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더 나아가 소비자 친화적으로 대응하자는 취지에서 설립됐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12월 설립된 신한카드 트렌드연구소 최연소 소장으로 발탁된 남궁 소장은 15년 이상 카드 CRM(고객관계관리) 및 데이터 분석 분야에서 이력을 쌓은 전문가다.
국내 카드사 최초로 신한카드가 선보인 빅데이터센터는 산하에 BD(빅데이터)분석팀, BD컨설팅팀, 트렌드연구소를 두고 있다. BD분석팀은 이름 그대로 수천만 건의 카드 결제 정보를 바탕으로 빅데이터를 분석하며, BD컨설팅팀에서는 이를 활용한 다양한 컨설팅 사업을 수행한다. 지자체나 공공기관의 컨설팅 의뢰를 받아 사업의 실효성을 분석, 전략을 제시한다.
트렌드연구소는 업계 1위 신한카드의 2,200만개 카드 소비 데이터 분석에서 한발 더 나아가 패션이나 쇼핑 트렌드, 세대별 관심사,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상 등 생활 전반에 걸쳐 인문학적 해석을 도출하는 곳이다. 10여명의 연구인력 역시 응용통계학을 비롯해 소비자학과, 미디어학과 등 다양한 전공자가 섞여 있다.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고객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한발 앞서 예측하고, 맞춤 서비스를 내놓을 계획이다.
남궁 소장은 “기본적으로 소비를 주도하는 계층은 인구수와 비례하는데, 특이할 만한 점은 최근 2차 베이비붐 세대인 1968~1974년생이 40대 중반에 진입하면서 40대 연령층의 소비가 가장 많다”면서 “새로운 트렌드로 ‘아재 문화’가 뜨는 것도 소비 주력층인 40대의 부상과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모바일 앱카드 회원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모바일 소비 트렌드도 연구소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다. 신한카드 모바일 앱카드 회원수는 404만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60% 이상 늘었고, 이용금액도 3조8,000억원으로 90%나 증가했다.
“기존에는 모바일 세대를 2030으로 국한하면서 모바일 분야에서는 2030에만 초점을 맞춘 마케팅 수립 전략이 유효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카드 빅데이터를 살펴보면 40대의 모바일 소비가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는 게 눈으로 확인되거든요. 특히 지난 2010년 아이폰 도입과 함께 스마트폰를 사용하기 시작했던 30대 후반 고객들이 40대로 진입하면서 모바일 소비층도 40대 중반까지 넓어지고 있다고 해석됩니다.”
세대별로 다른 소비 성향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대학생이나 군인이 대부분인 20대 초반은 대학가 주변에서 소비하는 액수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많은 만큼 물리적 이동이 잦아 택시 등 교통수단 결제 규모가 소비 수준에 비해 높은 편이다.
사회에 본격 진입하는 20대 후반부터 30대는 소비 수준이 급속도로 커지는 패턴을 보인다. 고급 소비 영역에 해당되는 백화점의 경우 몇 년 전만 해도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65대 45의 비중을 나타냈으나 최근에는 남성의 소비력이 높아지면서 5대 5의 비중을 보이고 있다.
결혼 연령대가 늦어지면서 출산 연령이 높아지는 현상도 카드 결제 패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최근 키즈카페 소비 계층을 분석한 결과, 40대 초반의 이용 비중이 크게 늘고 있으며 특히 육아를 조부모가 책임지는 가정이 늘면서 60대 이상의 키즈카페 카드 결제액도 증가하는 추세다.
4050세대 1인 가구(독신)의 경우 성별로 확연히 다른 소비 패턴을 보인다. 4050 독신 여성의 경우 피트니스 센터나 요가 등 운동이나 해외 여행, 미용 등 자기 만족적 소비가 많은 반면 4050 독신 남성들은 총 소비 규모가 여성에 비해 현격하게 적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경제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즉 최근 고소득 전문직 여성들의 독신주의 경향이 짙어지면서 싱글 여성의 소비력은 연령대가 높아져도 줄어들지 않지만, 결혼 시장에서 선택되지 못한 4050 싱글 남성은 상대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트렌드연구소는 이러한 분석 결과를 토대로 고객 인사이트 모델인 ‘코드나인(9)’을 선보였다. 코드나인은 고객의 성별·연령·소득·지역 등을 분석해 중장기적 소비 패턴을 짚어내는 핵심 상품 모델이다. 예컨대 30~40대 고소득 남성을 의미하는 ‘로엘(LOEL)’은 외모를 잘 꾸미고 패션 트렌드와 명품에 관심이 많다. 주요 키워드는 #명품브랜드 #해외 여행 #해외직구 #패션 #골프 등이다. 50대 이상 중산층 남성은 ‘브라보 라이프’로 분류되며 젊은 감성의 사회 활동에 적극적인 중년 남성을 뜻한다. 국내외 실속 여행을 즐기고 모바일 쇼핑, 대중 교통, 기부 등에 관심이 높다.
30~40대 고소득 전문직 여성을 뜻하는 ‘루비’는 자신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여성으로, #자기계발 #명품 #유기농 #네일 등의 키워드로 소비 성향이 드러난다. 20~30대 중간소득 여성을 뜻하는 ‘잇걸(It-Girl)’은 럭셔리 소비로 활발한 대외 활동을 하는 매력적인 젊은 여성을 지칭한다. #해외직구 #해외여행 #명품 #패션 #커피 등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빅데이터를 갖고 있다고 해서 항상 정확한 해석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데이터 해석이 개연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사회 변화상을 읽는 인사이트는 물론 현장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수다. 남궁 소장을 비롯한 트렌드연구소 연구원들은 특히 현장 투어에 공을 들인다고 한다.
“데이터가 설득력 있는 개연성을 확보하려면 누구라도 납득할 만한 가설을 가져와야 합니다. 데이터 자체는 해석이 다양할 수 밖에 없는 만큼 인문학적 가설을 검증하면서 인사이트를 찾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를 위해 ‘타운 와칭(Town Watching)’에 공을 들입니다. 백화점에서 ‘아이쇼핑(Eye Shopping)’을 하는 것처럼 현장 탐방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죠.”
이 같은 행보는 신한카드의 디지털 전략과도 맥이 닿아 있다. 신한카드는 지난 4일 창립 9주년 ‘Di9ital 1001’을 열고, 디지털 역량을 극대화해 ‘카드업계 1위’에서 ‘디지털 시장 리더’로 자리를 공고히 굳히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밝혔다. 1등 사업자에서 한발 더 나아가 ‘마켓 리더’가 되기 위해 전사적으로 디지털 방식을 활용, 새로운 소비자 가치와 비즈니스를 창출하겠다는 뜻이다.
위성호 신한카드 사장은 “신(新)디지털 시대를 맞아 모든 영역에서 디지털 방식을 활용해 새로운 고객 가치와 비즈니스를 창출해야 한다”며 “올해를 디지털 창업 원년으로 삼고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을 추진해 글로벌 역량을 갖춘 복합 금융회사로 재도약하겠다”고 밝히며 디지털 혁신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트렌드연구소가 ‘디지털 신한카드’를 위한 혁신적인 실험을 선도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