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불황이 기회다, 진화하는 ‘식탁지도’] 더 건강하게...더 간편하게..."혼족·2030세대 입맛 잡는다"

식품업계 합성첨가물 뺀 햄·부대찌개라면 등 선보여

주류업계는 과일맛 맥주·탄산 위스키로 신세대 유혹

토종 효모 식빵·유당 제거 우유 등 혁신제품도 잇따라



경기침체와 내수부진이라는 이중고에 놓인 식품업계가 차별화된 전략과 발상의 전환을 통해 불황을 기회로 바꾸고 있다. 기존에 없던 참신한 제품으로 새롭게 시장을 창출하거나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혁신을 도입해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는 게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1인가구와 2030세대가 핵심 타깃으로 부상하자 이들을 공략하기 위한 발걸음도 더욱 빨라지고 있다.

CJ제일제당의 ‘The 더 건강한 햄’은 햄은 건강에 이로운 식품이 아니라는 고정관념을 깨트린 대표적인 제품이다. 국내 냉장햄 시장 1위를 달리는 CJ제일제당은 건강한 식재료를 찾는 고객이 늘어나면서 시장이 위축되자 아예 처음으로 돌아가 신제품 개발에 뛰어들었다. 5년에 걸친 연구 끝에 합성첨가물을 빼고 돼지고기 본연의 맛을 살린 제품을 내놓자 출시 1년 만에 누적매출 400억원을 돌파하며 CJ제일제당의 간판 제품으로 자리잡았다.


차세대 식품업계의 격전지로 떠오른 간편식 시장에서도 주도권 경쟁이 뜨겁다. 대상은 간편하게 한끼 식사를 만들 수 있는 ‘청정원 컵밥’ 시리즈를 출시한 데 이어 전자레인지에서 조리가 완료되면 소리로 알려주는 ‘휘슬링쿡’도 새롭게 선보였다. 특수 제작한 밸브를 통해 편의성을 높였고 특급호텔 출신 요리사와 메뉴를 개발해 상품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아워홈도 30년에 달하는 식품 노하우를 바탕으로 탕, 국, 찌개 등 70여종의 가정간편식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프리미엄 짜장·짬뽕라면으로 진검승부를 벌였던 라면 시장에서는 부대찌개 라면이 새로운 승부처로 떠올랐다. 농심이 ‘보글보글 부대찌개면’을 출시하자 오뚜기가 경쟁에 가세했고 팔도도 신제품으로 맞불을 놨다. 부대찌개 라면은 이전에도 몇몇 제품이 있었지만 별다른 눈길을 끌지 못한 채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올해 출시된 신제품은 모두 프리미엄 라면을 표방하고 고객의 반응도 뜨거워 라면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류업계는 알코올도수를 낮춘 저도주와 경쟁사에 없는 이색 제품을 잇따라 선보이며 젊은 세대 공략에 나섰다. 하이트진로는 천연 망고 과즙을 넣어 새콤달콤한 맛을 살린 ‘망고링고’를 내놨다. 국내 주류업체 최초로 선보인 과일맛 맥주로 젊은 층의 호평이 잇따르자 최근에는 홍콩, 태국, 인도네시아 등 해외 수출길에도 올랐다. 오비맥주도 인기 제품 호가든에 유자를 넣은 ‘호가든 유자’를 틈새상품으로 출시하며 경쟁사와 차별화를 선언했고 롯데주류는 위스키에 탄산을 가미한 ‘스카치블루 하이볼’로 침체된 위스키 시장에서 새로운 돌파구 마련에 나섰다.


기존 제품에 혁신을 더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삼립식품의 ‘천연 효모 로만밀 통밀식빵’은 수입산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효모를 국산으로 대체한 제품이다. SPC그룹과 서울대가 11년 동안의 연구 끝에 개발한 토종 천연 효모에 통밀, 호두, 해바라기씨, 아마씨 등의 견과류를 넣어 출시 3개월 만에 300만개가 팔릴 정도로 인기다. 베이커리 전문점 위주였던 식빵의 유통망을 대형마트와 편의점으로 확대한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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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유업의 ‘소화가 잘되는 우유’도 고객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탄생했다. 이 제품은 유당 분해효소가 없어 우유 섭취에 어려움을 겪는 고객을 위해 국내 최초로 유당(락토오스)을 제거한 제품이다. 별도의 첨가물 없이 필터를 통해 유당만 분리해 우유의 영양성분을 고스란히 섭취할 수 있도록 해 침체된 우유 시장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매일유업은 최근에는 무균포장 기술을 적용해 상온에서 10주 동안 보관이 가능한 멸균제품까지 선보였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식품업계를 이끌 화두로 1인가구의 확산을 꼽는다. 혼자 사는 가구가 급증하면서 편의성을 극대화한 소용량 제품이 주력으로 자리잡고 자신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젊은 세대로 인해 프리미엄 제품의 비중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다. 시장조사업체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최근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90.4%가 소용량 식품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77%는 소용량 식품을 구입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1인가구의 씀씀이가 갈수록 커지는 것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동향에 따르면 올 2·4분기 1인가구의 평균소비성향은 77.6%를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포인트 늘었다. 가격대가 비슷하다면 조금 더 비용을 투자해 만족감을 얻는 가치소비가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경기침체로 소비자의 지갑이 얇아질수록 남과 똑같은 제품을 찾기보다 이른바 ‘가성비’가 높은 제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며 “1인가구와 2030세대가 식품업계의 주류로 부상하면서 조기에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식품업계의 주도권 경쟁이 더욱 심화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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