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서울을 비켜갈 리 없다. 다만 이렇게 고운 가을이 내려앉을 줄은 몰랐다. 그것도 서울 한복판 종로구에 말이다. 차량이 홍수를 이루는 광화문에서 버스에 올라탄 지 불과 10분. ‘보랏빛 안개’라는 그 이름도 몽환적인 자하문(紫霞門)은 조선 인조반정 때 광해군을 치기 위해 노론 무장세력들이 들이닥쳤던 후로 250년 동안 평온 속에 늘어져 있다. 하지만 지척에 버티고 선 초소 안에는 청와대를 방어하는 수도방위사령부 병력들이 눈을 부릅뜨고 서 있다. 지난 1968년 1·21사태 때 북한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치기 위해 시내버스를 탈취해 교전을 벌인 후로 이곳을 지키는 병사들은 긴장의 끈을 놓은 적이 없다.
하지만 병사들의 경계와 가을의 강림은 별개의 문제다. 북악스카이웨이로 올라가는 길을 건너 반대편 언덕으로 접어들면 시민아파트를 철거하고 2012년 복원한 인왕산자락 옥류동천의 상류인 수성동계곡이 가을 자태를 드러낸다. 겸재 정선이 그린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 가운데 한 곳인 계곡은 아직도 그 아름다움이 빛을 발하고 있다.
가을의 아름다움을 완상하는 호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올라온 길을 내려가 다시 차도를 건너 카페 산모퉁이를 끼고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이곳부터는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을 방불케 하는 백석동천((白石洞天)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즈넉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서울 옛 동네 골목길을 비집고 산 아래로 향한 지 겨우 10분 만이다.
부암동 일대를 맡고 있는 최정남 해설사는 “백석동천은 종로구 부암동 115·117번지와 산 2·3번지 일대를 비롯해 홍제천 지류의 상류에 건물 터 등이 남아 있는 별서(별장) 터”라며 “그러나 누가 처음 별서를 조성했는지 분명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한때 백사 이항복의 별장 터라고 알려졌다”며 “김정희의 호중 입사천초당(卄四泉草堂)이라는 또 다른 호가 있고 ‘백석정은 나의 북쪽 별장’이라는 글귀가 남아 있는 걸로 보아 그의 거처였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백석동천의 건물 자리는 주변보다 높은 대지 위에 사랑채와 안채의 건물터가 있고 사랑채는 담장과 석축 일부가 남아 있다. 50년 전만 해도 이곳에는 퇴락한 고택이 남아 있었다.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 이곳을 놀이터 삼아 뛰놀다가 어두컴컴한 숲으로 들어가면 고색창연한 고택에서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할머니 부부가 두런거리는 소리에 놀라 도망쳐 나왔던 기억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낙엽이 물들어 노란 잎들이 하늘을 가려버린 건물지 아래쪽으로는 연못지가 남아 있고 육각정자 인근에는 주춧돌과 돌계단이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발길을 받아내고 있다.
백석동천 기행이 끝났다면 이쯤에서 평창동 미술관들을 섭렵해보는 것도 좋다. 부암동에서 북악터널 쪽으로 10여분쯤 발길을 옮기면 왼쪽으로 베벌리힐스 뺨치는 부촌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살펴볼 것은 부잣집 높은 담장들이 아니라 김종영미술관과 가나아트센터 같은 국내 유수의 미술관들이다. 김종영미술관은 서울대 미술대학장을 지낸 조각가 김종영(1915~1982)의 20주기를 기념, 2002년 12월 문을 열었다. 김종영은 해방 후 한국미술계에 추상조각의 씨를 뿌린 선각자이자 후학을 길러낸 교육자였다.
김종영미술관의 본관 불각재에서는 상설전을 열고 있으며 봄이면 김종영특별전을 기획전시하고 있다. 신관인 사미루에서는 창작지원전과 오늘의 작가를 선정, 기획하고 명망 있는 작가의 초대전을 개최한다.
김종영미술관을 나와 찻길로 내려오다 보면 가나아트센터가 언덕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가나아트센터는 1983년에 개관한 가나화랑이 1988년 9월 평창동에 새 건물을 지어 문을 연 전시관 및 복합문화공간으로 전시장 3개, 야외공연장, 아트숍 등을 갖추고 있다.
프랑스의 건축가 장 미셸 빌모트가 설계했으며 안정된 느낌을 주는 외관으로 현대적인 건축양식의 전형으로 꼽힐 만하다. 미술관 1층에는 작가들의 작품·조각품 등을 전시·판매하는 ‘가나아트숍’과 ‘빌레스토랑’이 있으며 3층 세미나실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아카데미 강좌를 열어 미술 애호가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고 있다. /글·사진=우현석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