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반대

최병욱 상명대 군사학과장

'양심' 빌미 병역거부자 급증 가능성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최근 항소심(2심) 법원이 첫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 허용을 둘러싼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병역법(제88조제1항)에 따라 입영통지서를 받고 정당한 사유 없이 입대를 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게 된다. 병역거부자들이 현재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신념을 버리고 입대를 하거나 통상 1년6개월의 실형을 사는 것이다.

대체복무를 찬성하는 쪽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계속 전과자로 만들기보다는 병역의무 기간보다 대체복무 기간을 크게 늘리고 복지요원 등으로 복무시키는 것이 사회 발전에 더 이롭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대 측은 양심의 가치가 병역의무의 공적 가치에 우선할 수 없으며 이를 허용할 경우 자의적인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며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이 증가하고 있다. 종교적 이유로 병역 의무를 거부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이며 국제적 추세에 따라 우리도 이를 권리로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과연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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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재판부 의견에서 볼 수 있듯이 ‘양심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로서 이를 형사 처벌로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인식에 동의하기 어렵다. 모든 권리에서 절대적 보호를 받아야 하는 권리는 있을 수 없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경우 필연적으로 국방의 의무와 충돌하게 된다. 개인의 양심이 ‘국가 존립’ 그리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보장되는 ‘국민 전체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병역 의무의 공평한 부담’이라는 공익적 가치를 우선할 수 없다.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그리고 북한의 도발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병역 의무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병역의 의무는 그 의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을 전제하고 있다. 지금도 북한의 현실적 위협 앞에서 일정 기간 개인의 자유를 유보한 채 열악한 환경에서 이를 숙명으로 알고 묵묵히 나라를 지키는 젊은이들이 있다. 병역 의무는 남이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모든 국민이 함께 나눠야 할 책임이고 의무다.



둘째, 국제사회도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는 추세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유엔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양심적 이유로 군 복무를 거부해 교도소에 갇혀 있는 사람의 다수는 한국인이다. 수치만 보면 한국 인권의 후진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보고서를 인용함에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무엇보다 대부분 선진국은 이미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 간에도 상황이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단순히 수치만 강조할 경우 자칫 한국이 세계적으로 ‘양심의 자유’를 심대하게 침해하고 있는 국가로 인식될 수 있다. 한 나라의 병역제도는 그 나라의 정치, 경제적 여건, 사회문화적 전통, 안보 여건 등 복합적 요인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추세보다 남북으로 분단된 우리의 특수한 안보 환경, 그리고 무엇보다 병역 의무의 형평성에 대한 우리 국민의 높은 기대 수준을 고려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병역 의무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가수 유승준은 병역기피 사유로 아직까지 10여년 넘게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은 청문회나 선거 때만 되면 설혹 정당한 사유로 본인이나 아들이 군 복무를 면제받았다고 할지라도 마음에 큰 부담을 갖게 되고 실제로 정치적 타격도 입는다. 종종 대만의 사례를 들어 병역거부권 인정의 타당성을 주장하는데 대만과 우리는 상황이 질적으로 다르다. 대만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포함한 일체의 대체복무 관련 이슈가 국민의 관심을 끌고 있지 못하다. 대만과 같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포용하고 관용하는 인식이 높을 때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다.

셋째, 1년에 600명 정도를 면제해주는 것이 뭐 그리 문제냐는 주장이다. 이 정도는 군 전투력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것인데 위험한 주장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종교적·윤리적·철학적·정치적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 모두를 포괄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다수가 특정 종교이기는 하나 최근에는 특정 종교뿐 아니라 불교나 기타 종교 혹은 개인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 현상이 확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지금도 많은 이가 국적을 포기하거나 허위 진단서를 제출하는 등 병역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병역거부권이 인정되게 되면 자의적 양심을 빌미로 병역거부자가 급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자의적 양심을 누가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

넷째, 이들이 대체복무를 하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힘든 근무지에서 복무하도록 하면 된다는 주장인데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현 병역법은 공중보건의·산업기능요원 등 일종의 대체복무제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의 특별한 목적에 맞춰 기준에 적합한 자격을 갖춘 자들을 일정한 수요에 따라 선발해 운영하는 제도로 국가적·공익적 필요에 따라 한정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양심에 따라 병역 의무를 거부하는 자들이 개인의 필요에 따라 대체복무제를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인력 소요 예측의 어려움, 대체복무 인정 기준과 기간의 설정 등 대체복무 허용 시 예상되는 논란의 심각성이 크다.

1863년 미국 뉴욕에서의 징병거부 폭동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당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남북 전쟁 상황에서 부족한 병력을 충원하기 위해 복무 기간을 연장하는 대신 300달러만 내면 징병을 면제하는 법안을 시행했다. 불만에 찬 5만명의 빈민이 폭도로 변하면서 뉴욕은 일시에 무법천지가 됐다. 우리는 여전히 상류층의 병역 비리 현상을 보고 있고 이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논란의 쟁점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엄중한 안보 상황과 병역 의무의 형평성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오판하면 자칫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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