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발언대] 국적불명 ‘더치페이’ 대신 우리말 ‘각자내기’로

최혜원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장





글자대로라면 ‘사람의 마음’을 뜻하는 ‘인심(人心)’은 오히려 ‘넉넉한 인심’ ‘인심이 후하다’와 같이 ‘남의 처지를 살피고 도와주는 마음’이라는 뜻으로 더 자주 쓰인다. ‘광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에서처럼 한국 사회에서 말하는 인심은 순전히 마음만은 아닌 경우가 많다.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인심과 인정이라는 명목으로 혼탁해진 사회를 맑은 사회로 만들기 위한 좋은 시도임이 틀림없다.

이 법이 시행되면서 ‘더치페이’라는 용어가 연일 언론에 오르내렸고 일부 언론에서는 ‘각자내기’를 적극적으로 쓰기도 했다. 국립국어원은 지난 2010년 7월 누리꾼과 함께 ‘더치페이’를 ‘각자내기’로 다듬어 언론에 알리고 활용하고자 한 바 있다.


식민지 쟁탈 시대 영국인들이 음식값을 각자 지불하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태도를 가리키며 쓴 ‘더치페이(혹은 더치트리트·Dutch treat)’는 민족적 비하도 담겨 있어 우리말로 바꾸는 일은 더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당시 ‘각자내기’는 일반의 호응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9월 청탁금지법이 만들어지면서 ‘각자내기’가 ‘더치페이’에 대한 대안어로 뒤늦게 생명력을 얻어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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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은 이해하기 어렵고 낯선 외국어 등을 쉽고 편한 우리말로 다듬는 일을 지속해오고 있다. 때로는 일반인의 언어 감각과 동떨어진 말을 선정해 지탄 받기도 했고, 드물지만 ‘댓글(리플)’이나 ‘안전문(스크린도어)’과 같이 다듬은 말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도 했다. 낯설고 새로운 말인 다듬은 말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언론과 일반의 우리말에 대한 애정, 다른 이들과 좀 더 쉽게 소통하려는 배려 덕분일 것이다.

다듬은 말이 입에 설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우리말에 들어온 외국어를 그대로 쓴다면 우리말의 창조력과 생명력이 위축돼 문화적 언어로서 한국어의 위상은 점점 더 낮아질 것이다. 사회적 소통 속에서 외국어 대신 우리말로 다듬은 말을 하나하나 정착시키는 것은 우리말의 미래를 밝히는 일이 될 것이다.

최혜원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장

박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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