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苦言

김선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전례없는 '최순실 게이트'에

국정운영 동력 상실한 정부

대통령 직접 나서 사과하고

중립내각 구성해 내정 맡겨야





전제부터 얘기하고 시작하자. 필자처럼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경우 ‘꼴보수’로 낙인찍힐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있다. 수업 중에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공(功)을 과(過)보다 높이 평가하면 된다. 필자는 스스로를 합리적 보수라 여기지만 학생들에게는 꼴보수로 인식됐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주부터 온 나라가 그야말로 황망하고 두려운 정치 광풍에 휩쓸려가고 있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지칭되는 일련의 국정 농단 사건 때문이다. 그것이 전례 없는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 사건이기에 황망할 따름이고 파장 또한 과거의 정치 스캔들과 급이 다른 엄청난 것이기에 두렵기까지 하다.


훌륭한 지도자의 덕목 중 빠지지 않는 것이 ‘인사 능력’과 ‘소통 능력’이다. 그런 면에서 이 정부는 완전히 실패한 정부다. 대통령이 정부 요직을 능력보다 자신의 희한한 코드에 맞춰 채우다 보니 그로부터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리 만무했고 대통령 자신부터 국정에 대한 치열한 철학과 열의가 없다 보니 일선 공무원들 역시 지난 4년간 ‘우왕좌왕’과 ‘무사안일’로 일관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전적으로 대통령이 지도자로 무능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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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지난 4년 가까이 정부·여당 쪽에서 들려온 수사(修辭)들 중 지금까지 국민들 귀에 더 또렷이 남아 있는 것은 ‘가계 부채’나 ‘청년 실업’ 같은 단어들보다 ‘친박’ ‘진박’ ‘비박’ 등의 ‘박씨타령’이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뜻이다. 이들은 철저히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고 자기들끼리만 ‘소통(小通)’했다. 대통령이 국민을 우습게 보니 이들 눈에 국민이 제대로 보일 리가 있었겠는가. 그 와중에 대통령은 소통(疏通)의 귀를 ‘피보다 진한 물’인 한 민간인에게만 열었고 그 통로를 점거한 민간인이 배후에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해온 것이다.

제6 공화국이 출범한 이래 우리는 5년마다 한 번씩 대통령 친인척 관련 비리 사건들을 접해야 했다. 다만 이번에는 대통령 자신이 비리에 일정 부분 자발적으로 연루됐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대통령 탄핵’ ‘하야’ 등의 단어들이 연일 인터넷 실시간 검색순위 최상위권에 등장하는 것으로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자초한 것이지만 이미 이 정부는 국정 운영의 동력 대부분을 상실해버렸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경은 참담하기만 하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대통령의 임기가 1년4개월이나 더 남아 있다는 점이다.

전후 ‘경제 선진화’와 ‘정치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나라는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그리고 여기에는 고 박 대통령의 출중한 지도력이 크게 기여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러나 또 여기에는 박정희 대통령을 지지했건 반대했건 상관없이 그 시대 모든 국민의 피와 땀이 함께 녹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렇게 만든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이다. 다시 말해 이 나라가 두 여인이 맘대로 가지고 놀다가 싫증이 나면 아무 데나 처박아놓아도 될 놀잇감은 아니라는 얘기다. 지금 이 땅에서는 5,200만 국민이 힘들지만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훨씬 많은 수의 사람이 이 땅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이름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결자해지라고 했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성난 민심 앞에 직접 나서서 진정한 심정으로 석고대죄 하는 모습을 보여야한다. 이 마당에 추호라도 권력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문제 있는 비서진 몇 명을 교체했다고 해결될 일이 절대 아니라는 얘기다. 보다 중립적인 인사가 내각을 새롭게 구성해 개헌작업과 대선관리 등 내정 전반을 담당토록 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내정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북핵문제와 같은 외교 안보의 문제에만 전념하시라. 따라서 이번에 새로 임명된 민정수석 등 내정과 관련된 수석비서관의 임명은 철회돼야 한다고 본다. 이 길이 박대통령 자신을 위하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다만 이 길만이 지금의 광풍 속에서 이 나라를 구하는 길임을 고언(苦言)드리고자 한다. 김선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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