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쯤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독일인 남자 2명이 ‘한국의 맛집’을 소개해달라며 길을 물었다. 그들은 우리 음식이면 뭐든 좋다며 눈을 반짝였지만 이국적인 가게가 즐비한 가로수길에서 한국의 맛을 알려주려니 난감했다. 결국 몇 번 가봤던 삼겹살집을 알려줬지만 독일인들이 만족스럽게 식사를 했을지 걱정스러웠다.
최근 접하게 된 가로수길 고기 맛집 ‘고반식당’은 당시 독일인들에게 추천해주지 못했던 것이 아쉬운 곳이다. 입소문을 듣고 방문한 뒤 바로 대표에 인터뷰를 요청했을 정도로 세간의 평과 실속 모두 검증됐다. 첫 방문 당시 평일 저녁이었지만 줄이 길게 늘어서 20분 가량 기다린 후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지난 8월 가로수길에 서울 첫 매장을 내는 등 서울에서는 비교적 신생 브랜드에 해당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서울 최고의 핫 플레이스를 점령했다해도 과언은 아닌 듯 했다.
한지훈 고반식당 대표는 “브랜드 이름에 모든 의미를 담았고 그게 먹힌 것 같다”며 말문을 열었다. ‘훌륭한 식사’라는 뜻을 담은 ‘고반(高飯)’이란 콘셉트에 맞게 99%의 정직함과 1%의 노하우로 정성스런 한끼를 내놓은 것을 소비자들이 알아봐줬다는 것이다.
고반식당은 우선 밑반찬부터 기존 고깃집과 차이를 보인다. 명이나물·고사리·배추김치·갓김치·파김치·백김치·생와사비·천일염·갈치속젖·양파장아찌·쌈장 등 무려 11가지의 반찬이 고기와 함께 나온다. 한정식집을 연상케 하는 다양한 구성에 눈부터 즐거워지는 셈이다. 한 대표는 “고기를 쌈에 싸거나 김치를 구워서 곁들이는 정도인 기존의 구이 문화를 새롭게 바꿔보고 싶었다”며 “퓨전 한정식이 아니더라도 전통적인 음식을 다양하게 구성할 경우 전혀 색다른 음식 문화를 창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대표의 말대로 11가지의 반찬에 고기가 더해지니 무한한 음식 조합이 가능했다. 고기를 구워 천일염이나 생와사비 만을 올려 먹든가 고사리·명이나물·갓김치·파김치 등을 취향대로 곁들여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고기의 느끼한 맛을 완화해주는 개운한 맛의 찬들이 더해지니 질리지 않았다. 특히 ‘맨초밥’을 시켜 초밥 위에 고기를 얹고 와사비나 양파장아찌 등을 올려 먹는 것도 별미로 느껴졌다.
고깃집의 핵심인 고기 역시 상위 1%의 프리미엄 원육을 열흘간 숙성시켜 차별화된 맛을 자랑한다. 항정살의 기름을 제거하고 수직이 아닌 결대로 잘라 더욱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하는 돈치맛살이 대표 메뉴다. 이밖에 숙성 생삼겹·옛날 쫄갈비로 고기 메뉴를 구성했다. 한 대표는 “고기는 무조건 제일 비싸게 파는 것만 골라서 사온다”며 “원재료 값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이 비결 아닌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후식도 차별화했다. ‘촌 된장술밥’의 경우 경남 함양군 지리산 인근에서 직접 담근 된장을 사용해 만든다. ‘고란 명란밥’에는 색소를 넣지 않은 저염 명란을 올린다.
이밖에 내·외부 인테리어도 주로 나무를 사용해 차분하면서 깔끔한 느낌을 살렸다. 환기가 잘되고 불필요한 광고 문구가 없는데다 직원들이 고기를 80~90% 가량 구워줘 오직 식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고반식당은 올해 상반기 부산에서 직영 2개점을 내며 시작해 하반기 가로수길과 선릉에 각각 직영 3·4호점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강남역 인근과 대구 범어동에서 가맹 매장을 준비하고 있다. 한 대표는 “손님에게 훌륭한 식사를 제대로 대접해야 하는 만큼 ‘고반’이란 가치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것”이라며 “최근 론칭한 고반등심 브랜드처럼 이후 고반 이름을 붙인 반찬 등 다양한 시리즈를 선보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