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자본에 선행하며 그와 독립적인 것이다. 자본은 노동의 과실일 뿐이며 노동이 먼저 존재하지 않았다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노동은 자본보다 우위에 있으며 그보다 훨씬 큰 배려를 받아 마땅하다."
이는 1861년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의회에 보낸 연두교서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이보다 노동의 일차적인 특성을 잘 규정한 구절이 많지 않을 것이다. 원시 수렵채취의 경제에서 노동이 개인의 생존에 모든 것이었음을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그와 같은 노동의 위치가 자본이라는 제2의 생산수단을 축적하기 시작하면서 역설적이게도 흔들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링컨의 주장은 현대에도 유효하다. 노동을 고려하지 않고 경제를 운위하는 것은 기계화와 자동화가 극에 달한 현대라 할지라도 공허하다. 노동은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고 때로는 피로감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는 삶의 보람이기도 하다. 경제학에서 가르치는 것보다 일상의 노동은 훨씬 많은 의미의 덩어리인 것이다.
현대적인 의미의 노동조합이 형성된 것은 자본의 축적이 빠르게 이뤄지고 자본에 의한 노동지배가 심화한 산업혁명 이후다. 생산수단이 효율화하고 노동의 생산성이 증대하면서 역설적이게도 생산수단의 소유자인 자본가가 노동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기록에 남아 있는 19세기 노동의 착취와 노동환경의 처참함은 노동조합의 등장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하다.
이상적으로 말해 모든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결성하거나 그에 참가하고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규율이 없는 자본의 축적이 사회와 노동에 얼마나 유해한가는 자본주의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조합은 자본주의의 건전성을 담보하는 하나의 축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이 원리에 의해 행사되지도 못하고 합리적으로 평가받지도 못할 때 자본의 사회성은 무너지고 자본주의 자체가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에 관한 이와 같은 믿음은 우리의 현실을 보면 무너지고 만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폭력시위와 파업으로 날이 새는 줄 모르는 것이 이 나라의 노동조합이다. 동료 노동자의 보호를 위한 행동보다 정치구호가 먼저 등장하고 이 나라의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문제에 개입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과대망상에 빠져 있다.
최근 시위의 핵심주제는 노동개혁이다. 민주노총이 주장하는 소위 노동개악이다. 그러나 지금 노동개혁을 서두르지 않으면 이 땅의 노동 시장은 더욱 이분화하고 피폐화할 것이 분명하다. 현재 대한민국 노동 시장의 병인은 민주노총이 주동한 불법시위에 모두 나타나 있다. 핵심은 민주노총 회원들과 같은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 때문에 비정규직의 문제가 더욱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죽을 각오를 하면 살고 얻고자 하면 버려야 한다는 말들을 한다. 모든 개혁은 그런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개혁의 한편에서는 늘 그늘이 나타나지만 전체적으로 득을 보는 이들이 많다고 생각되면 추진하는 것이다. 노동개혁 때문에 직업의 안정성이 감소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연구에 따르면 노동 시장의 유연성이 증가한다고 해도 직업의 안정성은 감소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이제 어리거나 젊은 나라가 아니다. 그만큼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적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몇 번의 실수로 선진국의 대열에서 탈락하고 다음 세대의 노동환경이 더욱 열악해지는 경우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 노동조합이 언제까지 정치적인 이슈에 몰두하고 불법적인 시위에 정력을 낭비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노동조합의 이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노동자가 즐거운 마음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미래를 상상해본다. 주먹으로 찌르기보다 평화의 손바닥을 하늘에 내 보일 날은 언제 올 것인가.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차기 경제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