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권력자의 대포폰



딱 6년 전인 2010년 11월1일 국회에서 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민간인 사찰 관련 문건을 공개하면서 ‘대포폰’을 언급했다.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이 민간인 불법사찰을 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대포폰을 지급하고 지원관실 직원들이 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비밀통화가 대포폰을 통해 오가고 청와대 하명이나 지시도 내려졌다는 요지다.


검찰이 관련 업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대포폰 5개를 발견했지만 발표하지 않고 회수한 대포폰을 모두 청와대에 돌려줬다고도 했다. 이 의원의 의혹 제기에 대해 당시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다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최고의 도덕성을 보여야 할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에서 대포폰이라는 범죄 도구를 버젓이 사용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줬다. 이처럼 대포폰은 범죄에 이용하거나 범죄행위를 은폐하려고 쓰는 게 보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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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른 사람의 명의로 등록해 사용하는데 상당수는 외국인 관광객 명의를 도용한다. 여행 가이드가 여권을 회수한 뒤 사진을 찍어 돈을 받고 대포폰 유통업자들에게 명의를 판다고 한다. 여권 사본만 있으면 알뜰폰 사업자를 통해 수십 개의 대포폰(외국인 명의 알뜰폰) 복제가 가능하다니 놀랍다. 불법 유흥업소나 불법 대부업자, 주가조작 세력 등에게 대포폰은 필수품으로 통한다. 일부 기업에서 대포폰을 암암리에 쓰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민간인 사찰 사건에서 보듯이 정치권 또한 대포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불법 선거운동에 대포폰을 이용하다 적발된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에도 대포폰이 등장했다. 최순실씨는 대포폰을 4개나 사용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고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은 대포폰을 이용해 증거 인멸을 시도한 정황이 포착됐다고 한다. 권력 중심에 있던 사람들이 대포폰을 애용한 것을 보면 뭔가 숨기고 싶은, 떳떳하지 못한 일을 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대포폰을 썼다고 해서 범죄행위가 드러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다. /임석훈 논설위원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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