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盧의 남자? 박근혜 정부서 꾸준히 물망 오르던 김병준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노무현 정부 정책실장으로 종부세 등 주요 정책 설계

이해찬 전 총리 사임 후 총리 내정되기도

2009년 이후 친노계와 거리두며 새누리, 국민의 당 영입대상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로 내정된 김병준(62) 국민대 교수는 참여정부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 브레인 역할을 했던 ‘원조 친노(친노무현)’로 통한다.

참여정부 이후로는 공직과 거리를 뒀고,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더불어 민주당 내 친노계의 행보에는 비판적 자세를 유지했다. 새누리당과 국민의 당 등 여야 할 것 없이 영입 대상이 됐으며 최순실 파문으로 위기에 빠진 박근혜 정부의 국정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총리 후보자가 됐다.


그는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여야 정당의 정책 능력이 부족한 탓에 청와대를 견제하지 못했고 그 결과 비선 실세가 국정을 장악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고 비판했다. 개헌과 관련해서는 국회가 주도해 권한을 늘리는 원 포인트 개헌이 아니라 국정 운영의 연속성을 위한 전반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은 남은 국정과제 중 우선순위를 정리하는 기본적인 역할에 충실하고 총리는 여야와 함께 국정을 운영하면서 내각제 등을 실험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김 후보자는 1954년 경상북도 고령에서 출생했다. 1960년 4·19 혁명 당시 내무과장을 지낸 아버지가 사직하기도 했다.

대구상업고등학교와 영남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미국의 델라웨어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땄다.

귀국한 후로는 1984년 강원대학교에서 행정학과 교수를 맡았고, 2년 뒤인 1986년 국민대학교 행정학과로 자리를 옮겨 대학원 교학부장, 행정대학원장, 교수협의회 회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김 후보자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지방분권’이다. 국민대 교수 재직시절부터 한국 학계에서는 아직 낯설었던 지방분권을 설파하는 대표적 학자로 자리매김했다.

이 같은 김 후보자의 소신은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노 전 대통령과의 만남으로 연결됐다.

1993년 노 전 대통령이 설립한 지방자치실무연구소의 특강을 진행한 것을 계기로 둘의 오랜 인연이 시작됐다. 이듬해 노 전 대통령은 연구소장으로 김 후보자를 임명했다.

2002년 대선 때는 학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얼굴’을 드러내 놓고 선거운동에 주력하면서 ‘의리파’라는 평가도 받았다.

당시 대선후보 정책자문단의 단장을 맡아 정책캠프를 운영했고, 대통령 취임 이후 “무얼 제일 하고 싶으시냐”고 묻고 대통령이 “행정개혁”이라고 답하자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을 맡기로 했다. 이후 청와대 정책실장 등을 잇달아 맡으며 종합부동산제, 동반성장 전략, 제주특별자치도,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톱 다운 예산제도 시행 등을 내놨다.


이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대통령 정책특별보좌관 등 참여정부의 핵심에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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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참여정부의 국정과제인 지방분권 및 국가균형발전에 대해서는 노 대통령과 철학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잇따라 중책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충실히 구현하면서 일각에서는 ‘왕의 남자’,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부침도 적지 않았다.

김 부총리는 “헌법처럼 바꾸기 힘든 부동산 정책을 만들겠다”면서 부동산 정책에서 강경 태도를 유지하자 일각에서는 ‘좌파’라는 공격을 받았다.

“세금폭탄”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것으로 회자하면서 입길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2006년 7월 교육부총리로 임명된 뒤에는 당시 한나라당에서 논문 표절 의혹을 집중 제기하면서 13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는 일도 있었다. 검찰이 수사에 나섰으나 표절 대상 논문이 김 내정자 논문 이후에 나왔다는 점이 밝혀지며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교육부총리 임명 직전에는 이해찬 전 총리에 이어 총리에 내정되기도 했으며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4년에도 꾸준히 총리 후보 하마평에 올랐다.

참여정부 이후에는 공공경영연구원, 사회디자인 연구소 등의 이사장을 맡으며 정책 관련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의 친노계 인사들과 생각이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해 왔다. 2009년 국민참여당에 합류하지 않았고 이후에도 주변에 “노무현대통령께서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강조하셨는데, 정치하는 분들은 ‘조직된 힘’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비주류 인사들도 그에 대해 호의적이다. 정두언 전 의원은 김 내정자의 저서 ‘99%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를 주변에 선물로 돌리면서 공감한다는 뜻을 밝혔다. 최근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김 내정자를 당에 영입하려고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 당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했으나 당내 반발로 무산됐다.

임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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