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스물’은 잘 들어주고 잘 맞춰주는 김승우의 매력이 듬뿍 담긴 작품이다. 오랜만에 멜로영화로 복귀하는 그는 ‘나이에 맞는 인물’을 꾸준히 연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말과 같이 영화 속 민구는 캐릭터를 분석하기보다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흐름을 이끈다.
Q. 최근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영화가 흥행하고 있다. 멜로에 대한 부담은.
영화를 상품으로 봤을 때 티켓을 팔아야 할 대상이 현재 영화의 주 소비층인 20대는 아니에요. 그렇기에 이 영화를 봤으면 하는 관객이 쉽게 이해하고 만족시킬 수 있다면 성공한 것 아닌가 싶네요. 농담인데 10대에서 20대 초반에 첫사랑을 실패한 사람이 20대 후반에 이 작품을 보면 이해가 될거고, 내 사랑이 영원할거라 믿는 젊은층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거에요.
Q. 20대 옛 사랑의 감정이 40대에도 같을 수 있나.
첫사랑을 만나야 한다, 간직해야 한다 선택하라는 말이라면 간직하는게 맞다고 봐요. 그 당시 기억들이 과장되서 좋게만 기억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심지어 상처까지도 좋은 기억으로 포장돼 있을거에요. 예쁘게 포장된 기억을 굳이 뜯을 필요가 있는가,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있겠지만 지금 봐서 뭐하겠어요. 그런 생각 때문에 처음에 캐스팅을 거절한거고. 제가 민구였다면 비행기에서 처음 만났을 때 모르는척 했을거에요.
Q. 카라바조의 작품에 따라 두 주인공의 감정이 변해간다.
깊게는 몰라도 카라바조에 대한 다큐도 보고 약간의 공부는 했어요. 삶 자체가 전쟁같던 사람이더군요. 미술학적으로 학식이 깊은건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영화촬영 자체가 뜻깊은 여행처럼 느껴졌어요.
카라바조 때문에 영화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이야기 자체는 쉽거든요. 감독의 의도를 과잉해석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건 좀 부담스럽고,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로 접근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Q. 영화감독 캐릭터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 부분은.
감독님께서 저를 염두하고 찌질한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하셨잖아요. ‘해변의 여인’에서도 영화감독 캐릭터를 연기해봤고, 직접 연출을 해본 경험도 있고, 20여년간 주변에서 봐온 인물 대부분이 영화와 관련된 사람들인 만큼 그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Q. 배경이 굳이 이탈리아가 아니어도 괜찮았겠다.
충분하죠. 낯선 여행지에서 오는 묘한 설레임이 필요한거니까. 기차를 타고 혼자 부산을 가더라도 옆자리에 묘령의 이성이 앉았으면 좋겠다는 설렘을 갖잖아요. 실제 누가 앉으면 말 한번 걸어보고 싶고. 그런 감정을 끌어내는거죠. 우리 영화는 ‘비포선셋’의 대상이 첫사랑이라고 할까?
Q. 최근에는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를 많이 맡아왔는데.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해야죠. 이제는 어떤 역할을 ‘해보고싶다,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졌어요. 물 흘러가듯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카리스마가 있을 수도 있고, 로맨틱할수도 있고, 코미디도 좋고. 제게 맞는 캐릭터가 주어진다면야 당연히 해야죠.
Q. 오랜 연기비결은
주변에서 그런 평가를 해주는 것 아닐까요. 조심스럽게 생각해보면 ‘저 친구와 일하면 최선을 다 하는구나’하는 평가가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런 이유로 아직까지도 연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 역시도 당연히 그렇게 노력하고 있고.
Q. 주 관객층은 30대 중반 이상으로 예상된다. 그들에게 ‘봐야 할 이유’를 설명한다면
잔잔한 사랑이야기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선선한 가을에 첫사랑에 대한 설레임을 느껴보고 싶다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첫사랑은 그 자체로 가슴에 묻고 있어야 가장 좋은 기억이 될 테지만, 한번쯤 상상은 해볼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