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에 ‘P(Politics·정치)의 공포’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증폭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최순실 게이트’로 모든 국정이 마비됐고 대외적으로는 코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이 접전으로 치달으면서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졌다. 금융시장의 공포지수는 연일 치솟고 수출과 내수 모두 곤두박질치고 있다. 또 국가부도 가능성을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지난 2010년 유럽 재정위기 이후 최장기간 치솟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경기둔화에 대해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경고를 날렸다. 경제팀 리더십에도 구멍이 났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 10개월 만에 교체가 예정돼 주도적으로 나서기가 애매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후임자가 취임할 때까지 경제를 책임지겠다”는 식의 선언도 없다. 임종룡 경제부총리 후보자 역시 인사청문회 날짜도 잡히지 않았는데 전면에 나설 수 없다. 기재부 실무진도 애매한 컨트롤타워가 2개 생기면서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설상가상으로 8일(현지시간) 치러지는 미 대선은 접전 국면으로 흐르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모두 보호무역주의를 강조하고 있어 누가 당선돼도 안 그래도 휘청이는 한국 수출에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주한미군 철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주장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 당장 우리 금융시장은 ‘쇼크’ 수준으로 급락하고 중장기 경제·무역정책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6일 KDI는 ‘경제동향 11월호’에서 “소비와 서비스업 증가세가 축소되면서 경기 전반이 점차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와 함께 경제 사안을 다소 긍정적으로 보는 KDI가 ‘둔화’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례적이다. 보고서는 그동안 호평해온 내수에 대해서도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 수출과 제조업·고용시장도 세계 경제 회복세 미약, 구조조정 등으로 단기간에 반등하기 쉽지 않아 4·4분기 경기가 급강하할 것임을 예고했다.
이에 따라 4일 CDS 프리미엄(5년물 국고채 기준)은 45.36bp(1bp=0.01%포인트)로 8월9일(45.39bp) 이후 약 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CDS 프리미엄은 수치가 높을수록 해당 국가의 부도 가능성이 올라간다는 뜻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직후인 10월25일 이후 9거래일 연속 올랐다. 2010년 1월12일부터 22일까지 9거래일 연속 상승과 동률을 이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생산·소비·투자·수출 등 거시지표 모두가 악화하고 있다”며 “여기에 정치 리스크까지 겹치며 경제가 1994년에서 1997년 위기로 흐르는 국면과 유사한 양상으로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