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돌 = ‘그래, 나 혼자 산다’
(팀장·팀원들과 함께 한 점심시간)
오그래 팀장 : “다들 주말에 나 혼자 산다 봤어? 슈퍼모델 이소라 나왔잖아”
박송곳 대리 : “저도 그거 봤어요, 세상에 혼자 산지가 25년째라면서요? 남자 친구가 있더라고, 그래도 외롭긴 한가 봐요, 강아지도 많이 키우고 그런가 보던데요”
신입사원 김눈치 : “근데 같은 여자가 봤을 때는 정말 멋있더라고요. 골드 미스 느낌도 나고요. 혼자 사는 것도 멋있는 것 같아요”
박 대리 : “혼자 산다고 다 그렇게 사나 뭐. 솔직히 옆에 챙겨줄 사람 없으면 외롭잖아, 안 그래 이서경 대리?”
김 사원 : “맞아, 이 대리님도 혼자 사시죠? 혼자 살면 어때요? 혼자 사는 게 편하세요? 아직 결혼하신다는 이야기가 없어서 ^^”
오 팀장 : “너무 고르다 보면 결혼 힘들어지잖아. 남자 거기서 거기야. 적당히 고르고 시집가야지~ 시대가 아무리 변했어도 나이 들수록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 되는 건 맞다니까. 안 그래 박 대리?”
박 대리 : “하하, 그렇죠. 지지고 볶아도 와이프 있는 게 백배 낫죠. 팀장님 보고 저도 바로 결혼한 거 아니겠습니까. 이 대리도 얼른 결혼해야지. 내가 소개팅 주선 한 번 할게. 아, 이 대리 나이에는 선을 더 많이 보나?”
나 : “^^…”
그냥 웃었다. 29살이 되면서부터 이런 질문은 내 설명을 필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결혼한 남자들은 마치 나를 미리 해 놓았어야 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대업 과제인 결혼을 미뤄놓은 아이처럼 다룬다.
처음에는 일일이 설명하는 편이었다. ‘결혼할 거예요. (제발 제 걱정은 접어 두시고...) 제일 먼저 청첩장 드릴게요’라며 넉살 좋게 넘어가곤 했는데, 이런 내 대답이 반복되는 횟수가 늘어나면 날수록 지극히 사적인 ‘결혼’이라는 주제가 내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내 얼굴로 날아드는 첫 번째 돌직구. 답변을 원하지 않는 질문이라면 그저 웃어 넘겨라. 직장생활 5년 차에 접어든 나는 가장 효율적인 방어 자세를 터득했다.
# 두 번째 돌 = ‘크리스마스를 한참 지난 나이’
(거래처 부장님과 첫 대면한 자리에서)
거래처 A 부장 : “이 대리님,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나 : “서른 둘입니다”
A 부장 : “아…그러시구나…”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A 부장은 신중하게 다음 말을 골랐다)
A 부장 : “어려 보이셔서 20대인 줄 알았어요”
나 : “^^…감사합니다”
A 부장의 눈빛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대개 첫 만남 자리에서 내 나이를 듣게 되면 저런 반응을 보인다. 머릿속으로 이런 저런 생각이 스치는 찰나 속 “아주 애매한 나이”라는 반응 말이다.
요즘 32살은 많은 나이가 아니라는 데 대부분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적은 나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다.
8년 전 그러니까 내가 24살일 때, 기껏해야 서너 살 많은 남자 선배들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잌이야. 크리스마스 이브를 기다리듯 24살까지는 모두가 열광하지. 하지만 막상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팔리지 않고 싼 값에 처분되는 크리스마스 케잌처럼 25살은 꺾이는(?) 나이야. 여자도 25살 아래의 여자와 25살을 넘은 여자로 나뉘어서 25살 넘은 여자는 여자로서의 매력도 반감되지.”
당시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웃어 넘겼다.
8년이 지난 지금 몇 번을 곱씹어도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날 안타깝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진 건 사실이다. 마치 사그라지는 불꽃을 바라보듯이.
사적인 자리는 물론이고 공적인 자리에서도 달라지는 건 없다. 신상털기는 한국 사회에서 늘 자연스럽지 않던가.
조금 더 예의를 차리는 사람은 조심스럽게 학번을 물어 나의 나이를 가늠하곤 한다. 뭐, 어차피 같은 거 아닌가.
25살 넘은 여자라면 누구나 겪는 두 번째 돌직구다.
# 세 번째 돌 = ‘여자니까?, 그래서 어쩌라고??’
(여자 동기들과의 커피 브레이크 자리에서)
나 : “영업 2팀 팀장님 둘째 가지셨다면서?”
해외 마케팅팀 김소신 대리 : “진짜? 대단하시다. 요새 하나 낳아서 기르기도 힘든데.”
나 : “그러게, 그럼 언제 출산휴가 들어가셔?”
영업 2팀 박현실 대리 : “내년 3~4월쯤 들어가실 건 가봐.”
김 대리 : “그럼 영업 2팀은 어떻게 되는 거야?”
나 : “그러게, 복귀해도 2팀으로는 바로 못 오시지 않을까.”
박 대리 : “아무래도 그렇지, 전례가 있잖아. 대개 한직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지. 해외 지사 발령받고 싶어하셨는데 그것도 물 건너 갔다고 봐야지. 다른 남자 동기들한테 기회가 돌아갈 테니…”
김 대리 : “출산장려국가면 뭐해. 임신했다고 하면 회사에서 물먹기 일쑤에 다 잡은 기회도 뺏기고, 애 낳고 1년 쉬니 좋겠다는 속도 모르는 말까지 들어야 하잖아. 진짜 불공평하다”
박 대리 : “팀장님도 안되긴 했는데 솔직히 우리도 막막하긴 해. 당장 팀장님 들어가시면...”
여성 직장인의 어쩔 수 없는 딜레마가 바로 출산이다.
축복받아야 할 임신이 함께 일하는 팀원들에게는 조심스럽고 미안한 일이 되고 만다.
참 이기적이게도 나 역시 여자라서 십분 이해한다고 말은 하지만 막상 내 일에 더 정확히는 그로 인해 업무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면 정색부터 하게 되지 않을까.
언젠가 출산을 하게 될지 모를 내게 스스로 던지는 세 번째 돌, 어디서 언제 어떻게 날아올지 모를 변화구다.
올해 나는 32살이 됐다. 그리고 두 달 후에는 33살이 된다. ㅠㅠ
입사 5년 차에 접어든 중견기업 마케팅 부서 대리.
아주 잘 나간다고는 할 수 없지만 회사에서는 나름 실력을 인정 받고, 따르는 후배도 적지 않다. 거래처에서 인기도 꽤 좋은 편이다. (물론 싱글녀라는 이유로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편의일 수도 있지만)
양심상 ‘골드미스’라고는 못 하겠다. (연봉 수준이 ‘골드’는 아니다!!)
그래도 ‘실버미스’는 되지 않을까?
‘나 정도면 괜찮다’는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이런 자신감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는 게 갈수록 불편해진다.
사람들은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32살’, ‘싱글’, ‘여자’라는 세 가지 사실만 놓고 추리를 시작한다.
부하 직원 사람 만들기 위해 엄하게 가르쳐도,
늦게까지 남아 코피 흘리며 야근을 해도.
거래처의 말도 안 되는 ‘갑질’에 제대로 쌍욕을 해도
‘결혼 안 한 여자’라서 그렇다는, 묘한 연대와 공감의 분위기가 내 주위를 휘감는다.
나의 수백, 수천, 수만 가지 행동을 모두 한 줄로 설명할 수 있단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다.
복잡하게 얽힌 누군가의 행동의 시작부터 끝까지 ‘비혼인 32살 여자 대리’라는 팩트만으로 설명한다는 게 그리고 그걸 듣는 사람이 납득한다는 게 전혀 이해되지 않지만,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같은 설명에 수긍하는 탓이다.
‘비혼·32살·여자 대리’
다시 곱씹어도 나를 응축해서 보여줄 수 있는 게 ‘단 한 가지’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나를 판단하는 데 가장 많이 쓰이는 잣대이자 기준이 되어버린 것들.
여자라서 그리고 서른 둘이라서 게다가 비혼이라서 결코 쉽지 만은 않은 나의 직장생활.
‘#오늘도_출근’은 이런 틀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나와 내 주변의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들이다. 오늘도 출근하는 2030 모든 여성들에게 바치는 공감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한다.
*서울경제썸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똑똑한 2030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끌고 가는 과정에서 작은 힘이나마 보태기 위해 디지털 콘텐츠 기획 ‘2030 W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2030 W 프로젝트’는 여성 창업인 릴레이 인터뷰 ‘#그녀의_창업을_응원해’를 비롯해 여성이 직장에서 겪는 각종 에피소드를 다룬 서경씨의 직장일기 ‘#오늘도_출근’, 여성 직장인을 위한 맞춤형 재테크 코너 ‘서경씨의 #샤넬보단_재테크’, 최신 라이프스타일 정보는 물론 똑똑한 쇼핑팁을 알려주는 ‘서경씨의 #썸타는_쇼핑’, 웹툰·레고 등 이색 취미를 갖고 있는 기자의 생생한 체험기 ‘서경씨의 #소소한_취미생활’, 30대 초반 여기자들의 은밀한 연애담을 다룬 ‘서경씨의 #시크릿_연애일기’ 등을 요일 별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서울경제의 애칭인 ‘서경’씨를 통해 2030 여성 독자분들께 친구처럼 편하게 다가서 양질의 디지털 콘텐츠를 제공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 여성들이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꾸리는 데 보탬이 될 콘텐츠 생산을 위해 더욱 깊이, 더욱 뜨겁게 고민하겠습니다.
‘#오늘도_출근’의 프롤로그는 32살 싱글녀 이서경 대리가 결혼과 관련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느끼는 곤혹스러운 감정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오늘도_출근’은 2030 여성들의 생생한 직장 생활 속으로 뛰어 들어가 마치 나의 이야기인 것처럼 현장감 높은 이야기들로 꾸며질 예정입니다. 공유하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으시면 언제든 메일로 제보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