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고도 진 선거’. 미국 대선 역사상 가장 박빙이었던 2000년 선거에서 패한 앨 고어 민주당 후보에게 붙여진 평가다. 고어는 일반 유권자 투표에서 최다 득표를 얻고도 선거인단 득표에서 져 조시 W 부시 공화당 후보에게 대통령 자리를 넘겨야만 했다. 선거인단 득표수는 부시 271표, 고어 265표. 플로리다 유권자 투표에서 500여표 차로 석패하면서 승패가 갈렸다. 이 결과로 부시가 플로리다 선거인단 표( 당시 25표)를 모두 가져가면서 미 역사상 세 번째로 ‘소수파’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확정 발표는 선거 후 한 달이 훨씬 지난 뒤에 이뤄진다. 플로리다에서 수천 표에 달하는 투표용지 오류와 개표과정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재검표가 이뤄진 탓이다. 만약 연방대법원이 재검표를 중단시키지 않았다면 백악관 주인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 고어는 그러나 연방대법원의 재검표 위헌결정이 나오자마자 “우리 국민의 통합과 민주주의를 위해 패배를 인정한다”며 재검표 중단에 승복했다. 고어가 미 대선의 ‘위대한 패배자’로 기록되고 있는 이유다.
존 F 케네디(민주당)와 리처드 M 닉슨(공화당)이 맞붙은 1960년 대선에서도 재검표 논란이 일었다. 하와이주의 첫 개표에서는 닉슨이 141표를 더 얻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재개표 결과 케네디의 득표수가 115표 더 많은 것으로 번복됐다. 2차 재검표를 요구할 상황이었지만 닉슨은 “재검표가 이뤄지는 동안 대통령의 운명이 담보 잡힌다”며 그냥 케네디의 승리를 인정했다. 이번 대선의 민주당 후보 경선과정에서 보여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멋진 승복도 감동을 줬다. 경선에서 근소한 차로 지자 그는 “경선을 했고 결과가 나왔다. 그게 민주주의”라며 흔쾌히 승복했다.
당초 예상을 깨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손에 잡힐 듯했던 여성대통령의 꿈이 물거품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미 역사에서 어떤 패배자로 기록될지 궁금해진다. /이용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