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글로벌 정치1번지' 美國, 反세계화 포퓰리즘에 점령당했다

경제적 박탈감 큰 유권자들 배척주의 구호에 열광

'트럼프식 포퓰리즘' 국제정치 무대로 빠르게 확산

佛·獨 등 내년 유럽 선거에서 극우주의 부상 가능성

미국 대통령 선거일인 8일(현지시간) 도널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백악관 입성 확률이 높아지자 그를 지지하는 한 시민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적힌 인쇄물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뉴욕=AP연합뉴스미국 대통령 선거일인 8일(현지시간) 도널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백악관 입성 확률이 높아지자 그를 지지하는 한 시민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적힌 인쇄물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뉴욕=AP연합뉴스


“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도널드 트럼프가 해서 놀라웠다. 트럼프가 말하는 세계가 내가 보고 싶은 미국의 모습이다. 어쨌든 트럼프에게 투표할 것이다.”

8일(현지시간) 미 대통령선거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지지자들에게서 나온 공통된 발언이다.


기존 정치의 상식을 깬 ‘이단아’ 트럼프가 미국 사회에 내재했던 분노를 폭발시키며 결국 대선에서 승리하는 ‘대이변’을 낳았다. 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기성 정치와 백인 저소득층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을 자극한 ‘분노의 정치’가 4개월여 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국민투표에 이어 미국 대선까지 집어삼킨 것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브렉시트 결정에 이어 극단적 배척주의를 앞세운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지금까지 일부 후진국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포퓰리즘과 반(反)세계화의 물결이 국제사회 전반을 뒤덮고 있음을 확인시켜줬다. 특히 자극적인 언행으로 기성 정치에 대한 반감을 조장하는 트럼프의 전략, 일명 ‘트럼피즘(Trumpism)’이 이번 선거에서 성공을 거둠에 따라 트럼프식 포퓰리즘은 앞으로 국제정치 무대에서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우려된다.

트럼프 인기의 근원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필두로 한 그의 포퓰리즘적 메시지와 반세계화를 기치로 내건 고립주의 노선으로 풀이된다. 테러가 확산되는 와중에 이민 증가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자리 유출 등으로 박탈감이 컸던 미 유권자들의 ‘숨은 분노’를 트럼프가 파고들면서 백악관행 열쇠까지 쥐게 된 셈이다.


트럼프는 시종일관 기존 엘리트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감과 미국인의 잃어버린 자부심, 이민자들에게 빼앗긴 일자리에 대한 불안을 자극하며 ‘화난 백인(angry white man)’의 표심을 끌어모은 것으로 분석된다. 외신들은 앞서 영국에서 브렉시트 결과를 초래했던 ‘반체제적(anti-establishment) 분노’와 반이민 정서가 미국인들로 하여금 최초의 ‘아웃사이더’ 대통령을 탄생시켰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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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트럼프는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실업과 가계부채 증가 등 경제적 부담을 실질적으로 떠안은 백인 남성들이 자신의 핵심 지지층으로 자리 잡는 것을 확인하자 무슬림 입국 금지와 취임 직후 불법체류자 즉각 추방이라는 반이민 공약 등 자극적 막말을 쏟아내며 정치·경제적으로 피해의식과 박탈감이 큰 유권자들을 끌어들였다. 트럼프의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정치인들조차 외교관계와 미국 내 히스패닉 유권자들을 의식해 입에 담기 어려웠던 자극적 발언을 내뱉으며 국제사회의 비난을 한몸에 받았지만 미국 인구에서 여전히 다수인 백인, 특히 중산층 백인 남성들은 트럼프를 ‘정직한 정치인’으로 여기며 열광했다. CNN은 8일 출구조사 결과 응답자의 38%가 “변화를 원한다”고 답했다고 전해 이번 선거의 최우선 선택 기준이 “미국에 변화를 초래할 후보인지 아닌지였다”고 분석했다.

한편 기존의 정치문법을 깨뜨린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서 포퓰리즘을 기반으로 하는 트럼피즘이 글로벌 정치로 빠르게 번질 것이라는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이미 ‘아시아의 트럼프’로 주목받고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과 일부 유럽 극우주의 정치인들의 공격적 포퓰리즘이 각국에서 각광 받기 시작한 가운데 트럼프의 당선으로 이 같은 추세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미 탐사보도 전문지 마더존스는 “트럼피즘은 불법이민자의 지속적 유입으로 미국인이 느끼는 분노와 불안한 감정에 호소하고 있다”면서 미국 사회에 남아 있는 인종차별주의와 애국주의가 트럼프와 만나 트럼피즘을 빚어냈고 앞으로 이는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올해 말부터 내년에 걸쳐 각종 선거가 열리는 유럽에 미 대선 결과가 일으킬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4~5월의 프랑스 대선을 비롯해 독일과 네덜란드 총선 등 주요 선거가 줄줄이 예고된 유럽에서 난민 문제와 경기 침체 등에 분노한 백인 유권자들을 겨냥한 포퓰리즘 정당이 득세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반이민정책을 앞세운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을 창당한 장 마리 르펜은 트럼프의 승리 소식이 알려진 후 트위터에 “오늘은 미국, 내일은 프랑스”라며 내년 대선에서 FN의 승리를 다짐했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

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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