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미국 45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각국의 셈이 바빠졌다. 트럼프 당선인의 거침없는 행보는 전 세계 정치·외교안보·경제 판도를 뒤흔들 가능성이 높다. 최순실 사태로 국정 공백이 심각한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내우외환’이다. 서울경제신문은 10일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유병규 산업연구원장, 신성환 한국금융연구원장, 조장옥 한국경제학회장 등 국내 주요 경제연구원장과 학회장으로부터 트럼프 시대를 맞은 한국경제의 대응방안을 모아 지상좌담을 구성했다. 이들은 트럼프가 공약처럼 신고립주의로 갈 경우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이 닥칠 수도 있는 만큼 경제 분야의 전권을 가진 부총리를 조속히 임명해 대비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트럼프 당선을 어떻게 봤나.
△조장옥 한국경제학회장=전 세계에서 나타나는 흐름이 매우 걱정된다. 1930년대 불황 당시와 많은 점이 닮았다. 기본적으로 생산 여력은 있는데 수요가 부족하다.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니까 그 불만들이 이상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 1930년대는 결국 10~20%에 이르던 실업률이 2차 대전을 겪으며 1%까지 떨어졌다. 일본의 아베 정권,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까지 굉장히 조마조마한 상황이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세계사적으로 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무역이 발전했다. 이제 전 세계 선진국들이 보호무역·신고립주의로 가고 있다.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세계 경제 전체 교역이 위축되고 성장이 둔화될 것이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 비중이 70% 넘는 우리로서는 성장엔진이 꺼지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우리는 경제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없다.
△신성환 한국금융연구원장=당장 트럼프 당선인이 정책의 큰 틀을 어떻게 들고 나올지에 따라 불확실성이 증폭되느냐 가라앉느냐가 갈릴 것이다. 트럼프가 경제 전체를 보는 시각은 전문가로 보기 어렵다. 문제는 누가 경제 참모로 들어가 있는지인데 잘 보이지 않는다.
△권 원장=최순실 리스크가 트럼프 당선으로 가중되고 있다. 국내 상황도 자체적으로 처리할 능력이 없다는 게 현재 상황이다. 외국인들은 바보가 아니다. 돈을 빼간다.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어려움 닥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경제부총리도 뽑지 못하고 있다. 경제만이라도 확실히 정치와 구분해야 한다. 내가 볼 때는 임종룡 후보자 말고 딱히 다른 후보군도 없는 것 같다. 청문회 절차를 서둘러야 한다.
△조 회장=우리나라는 더 복잡한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으로는 남은 기간 갈 수 없다. 책임총리를 세워야 한다. 야당이 대통령을 끌어내리면 역풍 맞을 것만 걱정하는데 정말 나쁘다. 진정성이 안 보인다. 국민들은 살려야 할 것 아닌가. 야당이 빨리 총리를 정해줘야 한다. 정부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금융·외환시장이 특히 민감한데.
△유병규 산업연구원장=미국의 기준금리는 원칙적으로 연준이 결정하는 것이니 예정대로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시장 불안 심리가 고조되면 인상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외환시장은 요동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시적으로 자금유출이 나타날 수 있다. 미국의 통상압력이 높아지면 통화절상 압력이 강해질 것이다. 환율 불안정성을 높일 요인들이다.
△신 원장=12월 금리 인상이 부담스러워졌다고 본다. 불확실성이 커졌을 때 금리를 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트럼프는 저금리가 기업 옥석을 가리지 못하게 한다고 비판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저금리에서 고금리로 가는 것은 트럼프가 결정하는 게 아니다. 외환시장에서 불확실성 해소 시점은 공화당이 다수여도 트럼프를 견제하며 안정적인 국정운영이 가능하고 다른 나라 충격도 고려한다는 것이 확인됐을 때일 것이다.
△권 원장=일단 12월에는 올릴 것이다. 다만 내년에는 인상 속도가 늦어질 것이다. 트럼프 당선에 따라 경기회복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세계 경제가 불안하고 미국도 단기적으로 경제충격이 우려된다. 원화는 평가절하가 불가피하다. 폭을 예단하기 어렵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가능성은. 수출영향은 어떨까.
△유 원장=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우리가 가입 안 했으니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 하지만 한미 FTA가 재협상에 들어가면 미 수출이 많은 제조업은 견제를 받고 지적재산권·서비스업에 대해서는 국내시장 개방 압력이 높아질 것이다. 통상마찰이 늘면 모바일의 지적재산권, 특허권에 대한 무역제재 조치가 늘어날 수 있다.
△권 원장=미국에서 거론하는 것부터 예의주시해야 한다. 한미 FTA 해놓고 지키지 못하는 것도 있다. 외국 제약회사가 대표적이다. 약가에 대한 지나친 정부개입에 대해 미국에서 불만이 많았다. 또 금융업에서 전산처리, 빅데이터 분석을 우리나라에서만 할 수 있고 자료를 못 가져가게 했다. 이 부분에 대한 압박이 거세질 것이다.
-미국경제 전망과 국내 영향은.
△권 원장=‘미국을 위대하게’라는 트럼프 공약은 결국 중장기적으로 미국 기업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의미다. 미국 기업 이익을 높여 일자리도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자유무역을 통해 미국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공장지대에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게 이번 대선 결과다. 세계 경제는 물론 미국 경제도 당분간 안 좋을 것이다.
△신 원장=금융 측면에서 보면 전 세계적으로 은행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왔는데 멈칫할 것 같다. 트럼프는 전통적 은행을 중시하는 것 같다. 일례로 금융지주회사 규제 완화 주장은 미국 은행업 관점에서는 긍정적 변화를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반대로 트럼프 발언 중 미국 국채에 대해 재협상에 들어가겠다는 것도 있었는데 만약 그렇게 하면 전 세계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질 것이다. 물론 확률은 높지 않다.
△유 원장=물론 위험요인과 함께 기회요인도 있다. 공화당 정책은 전통적으로 자유무역주의인 점, 미국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에너지 개발투자, TPP 무산 가능성, 안전자산 선호에 따른 엔고 등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차분하게 대응책을 마련하면 될 것이다. /정리=이연선·임세원·조민규기자 bluedas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