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온과 잦은 비로 올해 쌀 생산량이 감소할 것이란 전망에도 쌀 가격이 또 하락했다. 21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그나마 하락 폭이 예전에 비해 크게 줄어 정부의 시장격리 조치가 어느 정도 ‘약발’이 먹혔다는 분석이지만 더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통계청이 발표한 이달 5일 기준 산지 쌀값은 20kg 정곡 기준 3만2,337원으로 지난달 25일(3만2,407원)보다 0.2% 하락했다.
80㎏ 기준으로 환산하면 12만9,348원으로, 지난달(12만9,628원)에 이미 1995년 이후 21년 만에 쌀 생산 농민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13만원대를 하회한 데 이어 최저 기록을 또다시 갈아치운 것이다.
특히 올해 수확기에 내린 잦은 비와 이상 고온 등으로 인해 수발아(穗發芽·벼 이삭에서 싹이 트는 현상) 피해가 커 쌀 예상생산량이 당초보다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가격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또 전년 동기 쌀값이 80㎏ 기준 15만1,644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가격 폭락은 예년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그나마 하락 폭이 0.2%까지 좁혀져 정부가 예년보다 시장격리 시기를 앞당기고 물량도 늘린 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풀이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달 8일 현재 공공비축미 등으로 농가에서 총 9만8,000톤을 매입한 상태이고, 민간 매입물량은 농협 130만톤 등을 포함해 160만톤에 이른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는 쌀값 하락 폭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수확량도 예상치보다 높지 않고 하락치도 완화되고 있으므로 곧 가격이 오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지 쌀값이 폭락하면서 직불금 지급에는 비상이 걸렸다.
애초 정부가 변동직불금 예산안으로 잡은 9,777억 원은 산지 쌀값이 14만원대인 경우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어서, 쌀값이 하락하면 변동직불금 규모는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자칫 변동직불금 규모가 세계무역기구(WTO)가 정한 농업보조총액한도(1조4,900억원)를 넘어서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더욱이 당장 올해뿐만 아니라 해마다 쌀 소비는 줄고 가격이 폭락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어,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으로 꼽히는 것은 다른 작물 재배로 전환하면 보조금을 지급하는 쌀 생산조정제다.
쌀 수요를 인위적으로 늘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쌀 생산량을 점차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현재 쌀 생산조정제 예산 904억원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예산심사를 통과해 국회 예결위원회로 넘어간 상태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여전히 정부 부담이 늘어난다는 이유로 생산조정제 도입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아직 예산 확정까지는 불투명하다.
현재 변동직불금의 경우 쌀 생산 농가에만 지급하고 있는 만큼 다른 작물을 재배할 때도 변동직불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직불금 제도를 손질하면 결과적으로 쌀 재배 면적 감소를 유도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민수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현실적으로 저출산과 고령화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쌀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은 맞는 것 같다”며 “결국 근본적으로 쌀 가격 하락을 막으려면 생산조정제 도입 등을 통해 재배 면적을 줄이고 적은 면적에서 고품질 쌀이 생산되는 방향으로 차츰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홍용기자 prodig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