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개소리하지 말라고 하십쇼. 요즘 남한 젊은이들은 ‘이러느니 차라리 북한과 전쟁을 벌였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합니다. 그렇게 북한을 완전히 불 지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나았을 것 같지 않습니까. 통일과도정부 같은 괴상한 정부도 없고…”
꿈에도 소원이라 노래하던 그것 대신 전쟁을 넣었다. 제목만큼 불편하고 불길한 예언은 ‘소설이니 다행’이란 안도감과 함께 언젠가 올지 모를 ‘그날’에 대한 묵직한 고민을 안겨준다. ‘표백’·‘한국이 싫어서’·‘댓글부대’ 등으로 우리 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담아냈던 소설가 장강명(사진)이 신작 ‘우리의 소원은 전쟁’(예담 펴냄)으로 또한번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다. 다른 것도 아닌 북한, 그중에서도 ‘김씨 왕조의 붕괴’를 들고 나온 장 작가를 전화 인터뷰로 만났다.
“통일 전문가들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평가했던 시나리오를 책 속 설정으로 했어요.” 작가의 말과는 달리 책장을 넘기는 내내 암울하다. ‘새로운 무법천지가 왔다. 북조선에서 돈 버는 자들은 다 사기꾼들이다. 뇌물을 가장 많이 쓰는 자가 남쪽 기업이나 공무원과 일할 기회를 얻는다. 힘 좀 쓴다는 녀석들은 모두 조직폭력단에 가입해서 다른 사람들을 갈취하고 있다.’(79쪽)
책은 ‘김일성-정일-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정치 붕괴 후 남한을 포함한 유엔평화유지군이 파견된 ‘통일과도정부’라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마약과 범죄의 온상, 치안의 공백, 그 틈을 파고드는 기회주의자와 자본주의. 장 작가는 장밋빛 포장을 두른 채 허깨비처럼 버티고 있던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뒤 이야기를 시작한다.
잿빛 예언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목표를 통일이 아닌 급변사태 관리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응준 작가의 소설 ‘국가의 사생활’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장 작가는 “통일 후 최악의 상황을 보여주는 ‘국가의 사생활’을 통해 독자들이 ‘이 정도는 아니겠지’하고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의 소원은 전쟁’의 경우 실제 전문가들이 ‘가장 이상적인 급변사태 시나리오’라고 평가하는 설정이라 더 암울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상은 소설보다 더 비극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센’ 책 제목에도 이런 의도가 반영됐다.
언론사 기자 시절 탈북자 단체 취재를 통해 북한 및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다는 그는 지난해 여름부터 작업에 들어가 1년 넘게 글을 썼다. 평소 글 빨리 쓰는 장 작가지만 이번엔 쉽지 않았다. “소설 속 상황이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인가에 대한 걱정도 많았고, 스릴러물로서도 완결성이 있길 바랐어요. 이게 잘 안돼 지난 1월엔 (글을) 다 엎고 다시 썼죠.” 그러는 동안 ‘헌법 14조’였던 책 제목도 지금의 것으로 바뀌었다. 대한민국 헌법 14조는 ‘모든 국민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가진다’이다.
장 작가는 결국 논의의 테이블을 지금껏 후 순위로 밀려나 있는 북한의 인권이나 급변사태 관리로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일돼 큰돈 벌 사람들은 전쟁 나도 돈을 법니다. 문제는 뭐가 되든 타격 입고 내몰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이에 앞서 당장 20만명의 정치범이 수용소에서 인권유린을 당하는 그 땅에 광물 자원이 얼마나 많고 잠재 개발 이익이 어떻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번엔 재미에 초점을 뒀다”는 그는 조만간 한국의 탈북자들을 취재해 북한 인권문제를 조명하는 논픽션도 펴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