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이 불발로 끝나면서 거야(巨野)의 대통령 퇴진 공세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내부에서 추 대표의 영수회담 철회를 압박하기 위해 대통령 퇴진을 당론으로 확정해서다.
제1야당인 민주당도 박 대통령 퇴진을 당론으로 정하면서 국민의당과 정의당 등과 함께 야 3당이 한꺼번에 대통령 퇴진에 나서게 된 것이다. 더구나 오는 주말 다시 장외 촛불집회에 야 3당이 한꺼번에 참여를 선언하면 그야말로 정국 흐름을 가를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민주당은 14일 오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추미애 대표가 영수회담을 취소하기 앞서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공식 당론으로 채택했다. 국민의당·정의당 등 다른 야당이 당론으로 퇴진을 내세운 것과 달리 그동안 민주당은 ‘대통령의 2선 후퇴’와 ‘국회 추천 총리 수용’이라는 어정쩡한 입장을 내세웠다. 민주당의 입장이 뒤바뀌려는 조짐은 지난주 말 서울 도심에 전국에서 모인 100만명의 촛불집회 이후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까지 촛불을 들고 박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자 제1야당으로 여론을 거스를 수 없다는 강경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어 왔다.
14일 열린 최고의원-중진 연석회의에서도 중진 의원들이 대거 “대통령의 결단을 언제까지 기다릴 수 없다. 보다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됐다. 당내 강경론에 밀려 당의 입장이 바뀌게 된 것이다.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진작에 국민들의 마음은 하야였는데 우리가 ‘2선 후퇴’ 주장을 너무 오래 붙들고 있던 감이 있다”며 대통령 퇴진을 당론으로 채택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 의원은 “퇴진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상 하야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야당 중에는 가장 뒤늦게 박 대통령의 퇴진 공세에 뛰어들면서 대통령 퇴진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은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박 대통령의 하야를 의미하는 퇴진을 주장하고 있지만 아예 한발 더 나아가 탄핵카드도 만지작 거리고 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비박(비박근혜)계에서도 탄핵을 이야기했는데 물밑 접촉을 통해 나눈 대화를 종합해보더라도 (여당에서) 40여석의 확보가 가능한 것 아닌가 예상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탄핵 정국을 주도해 새누리당 비박계를 껴안겠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탄핵안 가결, 헌법재판소의 확정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일단 검토에 나설 의향을 비친 것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탄핵을 요구하는 강경파가 늘어나고 정의당도 탄핵 추진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야당 주도의 박 대통령 퇴진 압박은 탄핵 움직임으로까지 이어지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야당은 아울러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새누리당 비박계와도 손을 잡고 박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시도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나경원 의원 등 비박계가 새누리당 해체 등을 거론하며 탈당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고 김무성 전 대표 등은 탄핵까지 거론한 만큼 이들과 야당이 손잡고 친박계를 무력화시키면서 대통령 퇴진 움직임이 보다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실화 여부를 떠나 민주당 내 탄핵주장론자와 국민의당·정의당 등 야권과 여당 내 비박계가 동시에 대통령 탄핵을 요구할 경우 정치지형도 새롭게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친박·친문 등 여야의 양극단 세력을 배제한 이른바 제3지대가 개헌이 아닌 대통령 탄핵으로 매개로 뭉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김광수기자 brigh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