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은 “아무리 그래도 결혼한 사람들끼리 저러면 안되지, 안되지” 하다가도 어느새 KBS 수목 드라마 ‘공항 가는 길’(10일 종영) 속 최수아(김하늘)와 서도우(이상윤)의 사랑을 “이래도 되는 것 아닌가” 싶은 마음을 한켠에 두고 응원하게 됐다. 어쩌면 불륜은 ‘절대 저질러서는 안되는 일’이기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과도하게 위악적으로 혹은 육체적 욕망을 좇는 이들의 타락으로 그려지곤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항 가는 길’은 불륜 드라마가 갔던 길이 아닌 중년들에게도 사랑은 순수한 감정, 그리고 위로받고 싶은 감정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어려운 길을 택했다. 절절한 대사와 아름다운 영상은 미화의 장치일 뿐이고, 불륜 드라마라는 오명을 벗을 수는 없을 것 같았던 ‘공항 가는 길’을 애틋한 멜로 드라마로 설득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며 여배우로서의 페이소스를 유감없이 발휘한 김하늘(38·사진)을 지난 14일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공항 가는 길’에서 김하늘의 연기는 빛났다. 드라마의 감성과 분위기를 그가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청자들은 그의 눈빛, 표정, 대사에 힐링됐다. “대본을 보면서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저렇게 따뜻하면 얼었던 마음이 이렇게 녹을 수 있구나. 미소 하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스트레스가 풀리고, 내 편이 생겼다라고 안심할 수 있구나’라고 느꼈고, 이 따뜻함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는데, 다행히 드라마를 보신 분들이 공감해주셨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했고, 또 안심했어요.”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힐링·공감 드라마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건 따뜻함이라는 그의 설명이다.
김하늘은 자신이 맡은 최수아라는 캐릭터를 연기하기가 만만치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처음에는 수아 역할이 너무 어려웠어요. 캐릭터를 잘못 잡으면 지루할 수 있어서 상대방에 따라서 달라지는 설정을 했어요. 딸 효은이는 수아가 애교를 부리고 의지할 수있는 대상이자 철부지 친구로, 남편 진석 앞에서는 ‘내가 뭘 잘 못했나’를 떠올려보는 불안한 아내, 도우랑 있을 때는 가장 맑은 소녀 같은 느낌을 살려야 했거든요.”
아름다운 드라마였지만 시청자, 배우, 제작진은 ‘불륜’이라는 굴레에서는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리 수아와 도우의 사랑을 지지한다고 해도 이 둘이 각각의 가정을 버리고 둘만의 사랑을 이뤄내는 게 과연 ‘옳은’ 결말일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던 것. 지지하는 결말과 ‘올바른’ 결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기는 시청자도, 배우도, 작가도,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작가님 감독님 그리고 저도 수아와 도우가 잘 되면 안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너무 좋아했는데, 그 어린 나이에 봐도 그들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겠더라고요, ‘공항 가는 길’ 대본에서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느낀 오래도록 기억 남는 사랑이 보였어요. 그런데 시청자들이 도우랑 서우의 사랑을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저를 비롯해 작가님, 감독님도 생각이 ‘둘이 잘되게 하자’로 결말이 바뀌었어요. 저희 시어머니도 ‘연기 잘한다, 재미있다’며 응원해주셨어요.”
연예계 입문한 지 올해로 20년이 다 돼가는 그는 “‘공항 가는 길’이 감히 말하건데 ‘인생 드라마’”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깊은 연기를 할 수 있는 멜로 작품을 10년 주기로 만나고 있는 것 같다”며 “이십 대 초반에 ‘피아노’, 이십 대 후반에는 ‘90일 사랑할 시간’을 하면서 나를 돌아보고 나에 대해 많은 것을 발견했는데 삼십 대 후반에 만난 이 작품도 역시 비슷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1978년 생인 김하늘도 곧 한국 나이로는 마흔이 된다. 여배우로서 나이 앞자리에 ‘4’자가 붙은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냐는 짓궂은 질문에 “지금까지 배우로서 그 나이에 할 만한 캐릭터들을 차근차근 해왔기 때문에 배우로서 나이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고 했다. 그러다가는 이내 “여자로서는 나이가 많은 게 싫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공항 가는 길’에서 수아 역으로 절정의 연기를 보여줬던 김하늘은 내년 초 영화 ‘여교사’에서 스산한 여교사 효주 역으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사진제공=SM C&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