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인수위원회가 15일(현지시간) 대선 승리 일주일 만에 격렬한 권력투쟁과 숙청으로 내홍에 휩싸였다. 일각에서는 ‘칼부림(knife fight)’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부통령 이상으로 영향력이 큰 국무장관과 재무장관 인선 등 첫 조각을 앞두고 인재풀이 크지 않은 트럼프 진영 내에서 극심한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AP통신은 이날 트럼프 인수위가 논공행상을 놓고 권력투쟁에 불이 붙으면서 정권 인수인계 업무가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대선 기간 트럼프 지지를 가장 먼저 선언한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주지사가 지난 11일 인수위원장에서 물러난 후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인이 새로 위원장을 맡았지만 인수인계 업무 양해각서에 아직 서명하지 못한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크리스티 지사가 인수위를 자기 사람으로 채우려 하자 그를 부위원장으로 밀어냈으며 크리스티의 측근인 마이크 로저스 전 하원의원도 이날 인수위에서 돌연 하차했다. NBC방송은 유력한 차기 중앙정보국(CIA) 국장 후보였던 로저스 전 의원의 낙마를 두고 ‘크리스티파’ 제거를 위해 “그가 ‘스탈린식 숙청’의 희생자가 됐다”고 지적했으며 CNN은 트럼프 인수위가 인물난 속에도 권력 쟁투를 위한 ‘칼부림’에 몰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크리스티 지사는 트럼프 정부의 법무장관 후보로 유력했지만 지금은 입각 자체가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CNN은 크리스티 제거에 트럼프의 최측근 비밀병기인 맏딸 이방카의 남편인 재러드 쿠슈너가 깊이 개입했다고 전하며 쿠슈너의 반대로 코리 루언다우스키 전 선대본부장의 백악관행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미 행정부에서 대통령 다음으로 주목받는 국무장관 자리를 놓고도 잡음이 커지고 있다. 유력 후보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경쟁자인 존 볼턴 전 유엔대사와 자신을 비교하자 “아마도 나일 것”이라고 단언하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그가 외국 기업을 위해 로비 활동을 한 경력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줄리아니가 파트너 변호사로 활동한 로펌이 2005년 베네수엘라 국영석유사를 위해 로비 활동을 벌인 일을 꼬집으며 향후 외교수장으로 업무에서 이익충돌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대선 승리 1등 공신인 억만장자 투자자인 칼 아이컨도 이날 골드만삭스에서 일한 스티브 므누친과 사모펀드(PEF) 출신 윌버 로스가 각각 재무장관과 상무장관 후보로 부상하자 “모두 훌륭한 선택이 될 것”이라며 강하게 두둔했다. 입각을 사양한 아이컨이 두 사람에 대해 “모두 나의 좋은 친구로 내가 아는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대놓고 편을 든 것은 므누친과 로스의 입각이 거론되자 한쪽에서 월가 인사들을 기용하는 것은 트럼프 당선인이 지지자들을 배신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진 데 따른 것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의 고문을 지낸 엘리엇 코언은 공화당 출신 전직 관료들에게 인재풀이 협소한 트럼프 정부에 합류해줄 것을 촉구했다가 이날 “트럼프 팀과 얘기해본 결과 내 권고를 바꾸기로 했다”면서 “(트럼프 측과) 가까이하지 말라. 그들은 화를 내고 교만하며 (내게) ‘당신은 패배했다’고 소리까지 지른다”고 비판했다.
한편 극우인사로 트럼프 선거운동을 총괄한 스티브 배넌이 백악관 비서실장과 동급인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수석고문에 임명된 것을 놓고는 민주당의 반대가 지속됐다. 차기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인 척 슈머 의원은 이날 “배넌의 위험하고 편협한 사고가 백악관에 만연해질 것”이라며 그의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연판장 작성 작업을 진두지휘했다./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