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눈물 흘리는 반가사유상…고단한 현실 달래다

설치작가 김승영 '리플렉션'展

보편적 슬픔·괴로운 인간상 표현

쉽게 떨치기 힘든 '삶 무게' 전달

사바나미술관서 12월 16일까지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을 재해석한 김승영의 ‘슬픔’ /사진제공=사비나미술관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을 재해석한 김승영의 ‘슬픔’ /사진제공=사비나미술관


국보 제 83호 반가사유상이 울고 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조차도 범접할 수 없는 반가사유상은 6~7세기 동아시아 불교미술의 대표이며 해탈과 초월의 자세로 머금은 은근한 미소로 유명하다. 그러나 설치미술가 김승영(53)의 신작 ‘슬픔’은 반가사유상의 눈물 훔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누구나 울 수 있다. 신이 된 부처도, 절대자가 된 권력도, 식솔을 거느린 아버지도 울 수 있다. 울 수는 있지만 책임과 각오가 다르기에 그 눈물은 더욱 무겁고 울림이 크다. 작가는 인간이면 누구나 내재하고 있는 보편적인 ‘슬픔’의 감정, 매순간 흔들림에 괴로워하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쉽게 떨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이야기한다. 김승영의 개인전 ‘리플렉션(Reflections)’이 사비나미술관 전관에서 다음달 16일까지 열린다.

전시장 1층에 들어서면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검은 우물 위로 굵은 쇠사슬이 오르내린다. 거울 같은 검은 물 위로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육중한 쇠사슬이 휘감기는 것을 상상하게 만드는 ‘천형(天刑)’에 대한 공포가 겹쳐지면서 마음뿐 아니라 몸까지 휘청이게 만드는 작품이다. 2층에는 마치 이 우물에서 끌어올린 것만 같은 벽돌 무더기가 놓인 철창 감옥이 설치됐다. ‘흔적’ ‘자유롭습니까’ 등의 글귀가 새겨진 채 깨지고 부서진 벽돌은 우리 안에서 정리되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처럼 보인다.

벽돌과 철창으로 제작된 김승영의 설치작품 ‘리플렉션’ /사진제공=사비나미술관벽돌과 철창으로 제작된 김승영의 설치작품 ‘리플렉션’ /사진제공=사비나미술관


전시장 안쪽으로 덩그러니 놓여 있는 펼쳐진 여행가방을 눈여겨보자. 흙에 묻힌 나침반은 방향을 찾지 못한 채 끝없이 흔들리고 있다. 혹시 지금의 나, 또는 우리가 그렇지 않은가 자문하게 만든다. 나침반을 둘러싼 4개 방향의 ‘그는’ ‘그 문을’ ‘열고’ ‘나갔다’는 글귀는 감상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전시는 지하1층으로도 이어지지만 놀랄 각오를 해야 한다. 지하 계단을 내려가면 ‘막혀버린 벽’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당혹감과 불쾌에 가까운 불편함. 이처럼 현대미술의 감동은 화사한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에서부터 현실에 대한 경각심까지 아우른다. 막힌 벽의 가운데 벌어진 틈 사이로 미술관 내부가 어둡게 보이고, 간간이 파도소리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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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조소과 출신인 작가는 1990년대부터 물·이끼·숯·낙엽 등의 자연물과 빛·음향·기계장치 등을 이용한 설치작업을 꾸준히 보여왔으며 1999년 뉴욕 PS1 레지던시에 참여한 후로는 정체성과 기억에 관한 주제에 매달려 왔다. 전시장 조명도 어둑한데다 작품도 묵직하지만 아픔과 고통, 두려움과 좌절 등 감정의 혼란을 겪는 이들은 오히려 어둠 속에서 빛을 찾을 법한 전시다. (02)736-4371

방향을 찾지 못한 채 흔들리는 나침반 등으로 이뤄진 김승영의 설치작품 ‘그는 그 문을 열고 나갔다’ /사진제공=사비나미술관방향을 찾지 못한 채 흔들리는 나침반 등으로 이뤄진 김승영의 설치작품 ‘그는 그 문을 열고 나갔다’ /사진제공=사비나미술관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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