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말 사퇴한 김종 전 문화체육부 제2차관 후임에 유동훈 문체부 국민소통실장을 17일 내정했다. 전날 “엘시티 비리를 철저히 수사하고 관련자를 엄단하라”고 법무부에 지시한 데 이어 이날 차관 인사를 단행한 데 따라 박 대통령이 ‘국정 복귀 프로그램’을 본격 가동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더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회부될 다음 주 국무회의까지 주재할 경우 박 대통령의 국정 복귀는 기정사실화된다.
이 같은 박 대통령의 국정 복귀 프로그램은 지난 15일 친박의 대공세와 동시에 시작됐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날 아침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이 “박 대통령은 하야 또는 퇴진은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가운데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당내 비박계 대선주자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여론조사 지지율 10% 넘기 전에는 어디서 새누리당 대권 주자라는 말도 꺼내지 마라. 자기 앞가림이나 잘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날 오후에는 박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가 “검찰 조사를 최대한 늦게, 되도록 서면으로 받겠다”고 밝혔다. 이 모두가 통합된 시나리오에서 나온 행동으로 보인다.
이어 16일 박 대통령은 부산 엘시티 비리 사건에 연관된 여야 정치인 등을 엄단하라고 법무부에 지시했다. 이는 박 대통령이 야권과 새누리당 비박계를 함께 견제하기 위한 카드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만일의 탄핵 사태에 대비해 새누리당 비박계의 이탈을 단속하는 것도 박 대통령에게는 중요한 과제다.
한 야권 정치인은 “이런 흐름에서 볼 때 오늘(17일) 문체부 차관 인사 단행 또한 박 대통령 국정 수행 복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보는 게 맞지 않겠냐”면서 “때마침 이날 친박 정치인과 보수세력의 박 대통령 편들기가 일제히 시작된 것도 우연으로 볼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친박계인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조원진·이장우 최고위원 등은 ‘인민재판’ 등의 단어를 써가며 박 대통령 보호하기에 나섰다. 박근혜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정홍원 전 총리는 성명을 발표해 “추측과 확인되지 않은 의혹에 힘이 실리는데 이것이 마녀사냥이 아니고 무엇이겠냐”고 박 대통령을 두둔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이 연내 일본에서 열릴 경우 (박 대통령이) 참석하지 못하면 (한국이) 많은 손실을 입게 될 것”이라며 박 대통령이 외교 무대에 다시 나서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야권은 이 같은 청와대의 반격과 친박의 대공세가 시작된 것을 알면서도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는 게 고민이다. 박 대통령의 버티기를 깨뜨릴 헌법적 수단은 탄핵이 유일하지만 의원들마다 셈법이 달라 야3당 및 새누리당 비박계의 공조로 탄핵이 추진되려면 긴 협의 과정이 필요하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GSOMIA, 국정 한국사 교과서 등 이념에 따라 찬반이 갈릴 만한 이슈들이 앞으로의 뇌관”이라면서 “이들 이슈와 박 대통령 퇴진·탄핵 요구가 맞물려 거대한 진영 대 진영의 싸움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맹준호·류호기자 nex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