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9조원의 빅딜을 통해 ‘오디오의 명가’ 하만을 삼키면서 완성차 업체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전 세계 카오디오 시장에서 41%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하만을 자회사로 보유하게 된 삼성이 그동안 완성차업체가 축적해온 기술력을 단기간에 빨아들일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업계에서는 “카오디오를 비롯한 차량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구성돼 있어 삼성이 전 세계 완성차 업체의 설계도면과 고객 빅데이터 등 속살을 훤히 들여보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일부 완성차 업체는 삼성의 하만 인수 소식을 접하고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만을 통해 삼성전자로 전달될 수 있는 회사 내부 정보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A사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개발팀장은 “최근 차량에 탑재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하나의 네트워크로 구성돼 있어 카오디오 업체들은 차량 개발 초기부터 함께 참여한다”며 “계약 조건에 따라 카오디오 업체에 차량 내부 설계도를 공유하는 경우도 있어 이번 대형 딜로 인한 유출 수준을 파악하려는 의도”라고 했다.
실제 제네시스 EQ900의 경우 하만의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 ‘렉시콘’의 스피커 17개가 차량 내부에 탑재돼 있다. 이 스피커들의 위치는 차량 내부 인테리어, 다른 전장부품 등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특히 완성차업체들은 각기 다른 네트워크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삼성전자는 하만 인수를 통해 각사의 네트워크 방식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차량 내부 설계도면 확보도 가능하다. 관련 부서에서 필요한 스피커의 도면을 하만에 넘겨주고 부품을 제공 받는 형태로 진행되지만 차량 전체 시스템과 구조를 알아야만 부품 개발이 가능한 만큼 하만이 차량 내부를 속속들이 파악할 수밖에 없다. 또한 차량 개발 초기부터 스피커의 위치 등 관련 내용을 조율하기 위해 하만의 개발자가 완성차업체로 파견되는 사례도 있어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삼성전자가 하만 인수를 통해 얻게 된 것은 차량 도면뿐만이 아니다. 전장업체 B사 관계자는 “구글이 빅데이터를 확보해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처럼 삼성전자는 이번 인수를 통해 전 세계 자동차 업체들의 고객 관련 빅데이터를 얻게 됐다”고 분석했다.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각국 고객들의 선호도에 따라 위치와 기능이 다르다. 완성차업체마다 수십 년간 그 나라의 주행 규제나 문화, 고객들의 성향에 따라 개발한 것들을 삼성이 단 한 번의 인수합병(M&A)으로 공유 받게 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우명호 한양대 미래자동차공학과 교수는 “삼성전자가 커넥티드카 관련 비즈니스를 이해하는데 하만 인수가 엄청난 도움을 줄 것”이라며 “오디오가 모든 미디어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만큼 9조원의 인수금액을 훨씬 웃도는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하만은 커넥티드카용 인포테인먼트·텔레매틱스·보안솔루션 등 전장사업 분야 글로벌 선두기업으로 하만/카돈·JBL·마크레빈슨·AKG 등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를 갖고 있다. 카오디오에서는 뱅앤드올룹슨(B&O), 바우어앤드윌킨스(B&W)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며 전 세계 시장점유율 41%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공급하는 완성차 업체는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메르세데스벤츠·BMW·아우디·볼보·페라리·마세라티 등 프리미엄 브랜드를 총망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