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한국 경제에 기대할 건 없습니다. 체질 개선의 마지막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한국 경제학자 43명이 바라본 내년 한국 경제는 암울함 그 자체다. 이들은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 “2017년부터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대기업 총수 조사와 맞물려 국내 설비 부문에 타격이 예상된다는 전망도 나왔다.
이근(왼쪽)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겸 경제추격연구소장은 22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2017 한국경제 대전망’(21세기북스) 출간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올해는 추경으로 간신히 버틴 한 해였다”고 진단한 뒤 “추경 효과가 사라지고 금리 인하 추세가 멈추는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장기 저성장이 펼쳐질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대선 이슈까지 맞물려 가계부채 급증, 잠재 성장률 하락, 국가 채무 증가, 소득 불평등 심화 같은 이슈가 한층 더 부각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신간 ‘한국경제 대전망’은 매년 각국의 경제 성과를 ‘추격지수’로 발표해 온 경제추격연구소가 펴낸 보고서로, 연구소 소속 경제 석학 43명이 모여 올해 경제를 되돌아보고 내년 일어날 경제 이슈를 예측·분석했다.
대표 저자인 이 교수는 “정부가 돈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거시정책은 리스크 관리 이상의 효과를 더는 내지 못한다”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할 매커니즘이 중요한데, 한국은 이 시스템이 고장났다”고 지적했다. “굴러갈 힘 없는 고장 난 차와 다를 게 없다”는 이야기다. 그는 2000년대 초반 대기업을 경험한 사람들이 나와 벤처 기업을 창업, 디지털 혁신을 주도한 사례를 들며 “당시 활성화됐던 벤처기업에 대한 스톡옵션 제도가 이후 불리하게 바뀌면서 벤처 창업이 크게 위축됐다”며 “스톡옵션 제도를 비롯해 벤처 기업 상장 시 차등의결권 부여, 장기보유 주식에 대한 혜택 강화 등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디지털’로 대표되는 3차 산업혁명을 기회로 삼았던 것과 달리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은 뒤처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석학들은 한국이 자칫 선진국에 안착하지 못한 채 ‘선진 도상국’에 머물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내놓았다.
트럼프 시대 개막으로 각국의 보호주의는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미국의 고립주의는 역으로 중국에겐 기회가 되겠지만, 또 한편으론 미중 간 통상 마찰의 강화를 의미하기도 한다”며 “보호무역주의 시대에 한국은 젊은 인구가 많은 동남아 시장에 신경 써 새로운 해외 마켓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대외 변수보다는 내부 이슈가 더 큰 파급력을 발휘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이준협 국회의장 정책비서관은 “글로벌 경기 침체에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까지 맞물려 한국의 성장 잠재력은 너무 빨리 훼손되고 있다”며 “가계 부채 증가가 소비 감소, 채무불이행으로 이어져 중산층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부자의 소득 증가가 저소득층의 소득 감소로 이어지고, 소득 불평등 탓에 경제성장률이 떨어졌다는 보고서가 잇따르고 있다”며 ‘소득 불평등 완화’와 ‘포용적 성장’ 등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촉구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내년 경제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 비서관은 “한국의 경우 경제가 정치 사이클에 크게 연동되지는 않는다”며 “최근 논란과 내년 대선이 거시 경제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설비 부문은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대기업 총수 조사와 맞물려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