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 화장품이 국내에 들어오는 만큼 우리도 적극적으로 해외로 나가 국산 제품을 팔아야 할 때입니다. 해외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독특한 제품이 필요한데 바로 ‘삼미’(‘ABC인삼크림’의 후신)가 그 역할을 해낼 것입니다.”
1982년 임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선대 회장은 해외 시장 공략 의지를 재차 강조하며 국가별 차별화 전략 카드를 주문했다. 국내 화장업계 최초로 태평양(아모레퍼시픽의 전신)이 ‘오스카’ 화장품을 해외로 수출한 지 20여년이 지났지만 두각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다 1970년대 일본 도쿄를 시작으로 미국·독일에 지사와 법인을 설립해 해외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지만 국산 화장품을 알리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2013년 아모레퍼시픽은 국내 화장품업계 최초로 수출 1억달러를 달성한 데 이어 2억달러 돌파도 목전에 두며 글로벌 화장품 기업으로 성장했다.
아모레의 해외 진출은 서 선대 회장의 태평양 설립과 동시에 시작된다. 1947년 생계 유지를 위해 동백기름과 분을 팔던 서 선대 회장은 개성에서 서울로 자리를 옮겼고 기존 가게 이름도 ‘태평양상회’로 바꿔 달았다. 태평양 바다처럼 넓고 큰 가게를 만들고 언젠가는 조선의 화장품을 해외에 알리겠다는 포부를 담은 것이다.
해외 시장에 태평양의 기술력을 알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아모레퍼시픽의 대표 브랜드 ‘설화수’의 모태인 ‘ABC인삼크림’이다. ABC인삼크림은 글로벌 시장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독보적인 무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서 선대 회장의 뜻에 따라 연구진이 2년 동안 천연원료를 분석한 끝에 1966년 태평양이 세계 최초로 선보인 인삼 사포닌을 원료로 한 인삼 화장품이다. 이후 ABC인삼크림은 ‘진생삼미’ ‘삼미’ ‘설화’ ‘설화수’로 변화하며 세계를 대표하는 한방 화장품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중국 시장은 아모레퍼시픽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포석이 됐다. 아모레퍼시픽의 중국 진출은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시장의 개방이 가속화되기 전인 1993년 선양 법인을 설립하고 동북 3성을 중심으로 백화점과 전문점 경로를 통해 아모레 제품을 공급하며 동북 지역 화장품 시장 점유율 4위로 올라섰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기세를 몰아 라네즈를 ‘아시아 브랜드’로 키우기로 결정하고 중국 시장 도입에 앞서 3년간의 사전 조사 및 현지 조사를 통해 백화점 중심의 고급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이를 위해 라네즈를 글로벌 뷰티 브랜드의 각축장인 홍콩 시장에 먼저 진출시켜 경쟁력을 높이기도 했다.
글로벌 유수 뷰티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한 아모레퍼시픽의 해외 진출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1990년대 태평양은 화장품의 본고장인 프랑스에서 ‘순’을 성공시킨 후 ‘리리코스’를 선보였지만 현지에서 외면받고 철수했다. 이후 아모레퍼시픽은 프랑스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별 차별화 전략을 구사했고 미국·중국·독일 등 18개국에 진출했다. 향후 5대 글로벌 챔피언 브랜드(설화수·라네즈·마몽드·에뛰드·이니스프리)를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는 한편 넥스트 글로벌 브랜드의 사업 기반 조성을 통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