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채무로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빚을 70%까지 감면해주는 국민행복기금의 회수율이 이달 들어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경기 침체로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영향도 있지만 최순실 일가의 불법적인 재산 축적 의혹으로 인해 채무를 성실히 갚아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에 회의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사회가 자칫 ‘빚 안 갚는 사회’로 갈 수 있다는 위험 신호가 될 수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8일 신용정보 업계에 따르면 국민행복기금의 이달 채권 회수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A사는 지난달 회수율이 0.143%였지만 이달 회수율은 0.068%로 연간 평균의 절반 밑으로 떨어졌다. 또 다른 신용정보사인 B사 역시 이달 들어 회수율이 지난달의 80%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11월에 특별한 계절적 요인이 없는 상황이지만 채권 회수율이 급격히 낮아진 것이다. 채권 회수율은 전체 채권금액 가운데 회수된 금액을 말한다. 국민행복기금은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채무불이행자에 대한 신용회복에 나서겠다고 공약을 세운 뒤 지난 2013년 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시작된 사업이다. 장기연체채권을 채무자 상환능력의 70%까지 감면해주고 최장 10년간 분할상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서민금융지원 프로그램이다. 캠코에 따르면 올 상반기까지 국민행복기금 이용자가 93만8,000명에 달했다.
국민행복기금의 이달 채권 회수율이 급락한 이유는 경기 침체로 살림살이가 팍팍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3·4분기 가구주 연령이 40~49세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505만2,153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03% 감소했다. 40대 가구주의 소득이 감소한 것은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처음이다.
신용정보 업계에서는 이와 함께 박 대통령에 대한 반감과 최순실 게이트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행복기금이 박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만큼 채무자들의 거부감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분노와 무기력증, 일상에 대한 회의가 이런 결과를 낳고 있다는 분석이다. 권력의 힘을 빌린 일부 세력이 막대한 재산을 증식하고 심지어 학업성적이 바닥권이어도 명문대를 진학시킬 수 있는데 돈을 갚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살면 뭐하냐는 회의감이 급속도로 커졌다는 것이다. 한 신용정보사 관계자는 “채무자들 사이에 국민행복기금은 박 대통령의 산물이기 때문에 돈을 갚는 것 자체가 박 대통령을 도와주는 행위가 된다는 말이 돌고 있다”며 “게다가 온갖 불법이 망라된 최순실 게이트를 보면서 ‘빚을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균열이 생겨 회수율이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가계부채가 1,300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현상이 확산되면 한국 사회가 ‘빚 안 갚는 사회’의 늪에 빠질 수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효찬 여신금융연구소 실장은 “채무자들이 성실 상환 의무를 져버리면 금융 시스템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며 “금융 당국이 이를 위험 신호로 인지하고 채무자들을 위한 의식 전환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