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석유 감산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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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이집트·시리아의 4차 중동 전쟁이 한창이던 1973년 10월16일,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 6개국이 긴급 회동을 가졌다. 발표 내용은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원유값을 배럴당 2.9달러에서 5.11달러로 올리고 매달 5%씩 감산해 2년 후에는 아예 생산을 중단하겠다는 것. 이스라엘을 지원하던 미국·네덜란드·일본 등에는 수출 중단 조치까지 꺼냈다. 사상 처음 겪는 석유 감산과 수출 중단 조치에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미국에서는 주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는가 하면 난방유를 못 구해 얼어 죽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의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라는 낯선 용어가 보통명사처럼 사용되던 시기도 이때다. 이때의 석유 감산은 공공의 적이었다.


하지만 석유 생산국의 기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유가 급등으로 산유국들끼리 증산 경쟁이 불붙으며 한때 20달러를 넘어섰던 유가는 10달러까지 내려갔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중심으로 거의 매년 감산이 시도됐고 한 해 두 번이나 감축하기도 했지만 유가는 요지부동이었다. 하지만 덕분에 우리나라는 사상 유례없는 ‘3저(低)호황’을 경험했다. 연 10% 이상의 성장과 증권·부동산 값 폭등으로 졸부들이 속출하면서 ‘룸살롱’이라는 삐뚤어진 밤 문화가 판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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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이던 석유 감산의 이미지가 변한 것은 2008년 이후. 그해 서둘러 하루 150만배럴 감산 합의를 했지만 2011년 이후 저성장의 덫에 걸려 유가는 좀처럼 제자리를 잡지 못했다. 세계 경제도 경기 침체→유가 하락→신흥국 경제위기→세계 경제 침체 심화라는 악순환에 빠졌다. 유가 상승이 세계 경제 부활의 핵심이라는 얘기가 나왔던 이유다.

OPEC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하루 120만배럴 감산에 합의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합의가 산유국의 재정 부족과 선진국의 디플레이션 해결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신흥국에 대한 수출이 되살아날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는 모양새다. 8년 전만 해도 꿈에도 생각 못했을 반전이다. 하기야 전에 생각지도 못한 것이 어디 이것 하나뿐이었겠는가. 세상은 요지경이다. /송영규 논설위원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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