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차 대국민담화에서 박 대통령이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하자 야3당은 ‘국회에 자중지란을 일으키기 위한 폭탄’이라는 논평을 앞다퉈 내놓았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무서운 함정”이라고 경계심을 드러낼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오전부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탄핵안 발의 여부를 놓고 충돌하면서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알면서도 당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번 전략은 야2당이 알면서도 걸릴 수밖에 없을 만큼 강력한 덫이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임기 단축을 국회에 맡기겠다”고 국회에 공을 넘긴 것은 탄핵 국면에서 새누리당 비주류가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음을 간파한 데 따라 나온 구상으로 보인다. 캐스팅 보트를 쥔 비박계의 마음을 흔들면 우선 탄핵을 피할 수 있다. 아울러 탄핵 강행파와 협상파가 충돌하면서 판 자체가 깨지는 ‘2차 효과’까지 거둘 수 있음을 미리 꿰뚫어보고 청와대가 이번 카드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의 3차 담화 발표 직후 청와대 안팎에서는 ‘과연 누가 이런 수를 설계했을까’를 놓고 수군거리는 소리까지 들렸다.
그러나 이날 저녁 야권이 뒤늦게 전열을 가다듬어 5일 표결 움직임을 나타내면서 분위기가 다시 바뀌었다. 야권이 실제로 5일 표결을 시도할 경우 이번엔 새누리당이 코너에 몰린다. 표결에 참여하기는 싫지만 거부할 경우 민심의 파도에 당이 붕괴할 수도 있다. ‘신의 한 수’를 뒤엎은 수를 야권이 만들 수도 있는 상황이 이날 하루에 벌어졌다.
정치권에서는 청와대의 핵심 노림수는 ‘시간 벌기’에 있다고 보고 있다. 2일 탄핵이 물 건너 간 만큼 5일과 9일 탄핵까지 피해 나가면서 시간을 끌기 위해서는 또 다른 수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시내의 한 사립대 교수는 “청와대 입장에서는 여야 4당이 싸우는 과정을 지켜보기만 해도 시간은 간다”면서 “임기 단축 국회 협상이 길어지게 하기 위해 청와대가 사활을 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국회가 합의한 일정에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박 대통령의 입장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면서 “탄핵 일정 협상 또한 국회가 할 일이므로 청와대는 논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