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방송된 KBS2 ‘다큐멘터리 3일’에서는 ‘가방, 꿈을 담다 - 양천가방협동조합 72’시간이 전파를 탔다.
서울 양천구 신월동은 저층의 연립주택과 골목들이 이어져 있는, 겉으로 보기에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동네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주택가 반지하 공간에는 아직도 간판도 없는 수많은 소규모 가방공장들이 숨겨져 있다.
한때 한국 가방 생산의 중심 기지였던 신월동. 하지만 많은 가방업체들이 인건비가 싼 중국이나 베트남으로 생산기지를 옮겨가고 일감이 크게 줄어들면서 쇠락을 거듭해왔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 해 신월동의 가방 장인들은 힘을 합쳐 ‘양천가방협동조합’을 설립하게 된다.
대부분 3-40년간 가방제조에만 매달려온 신월동 가방 장인들의 식지 않는 열정과 꿈이 담긴 양천가방협동조합의 가방 이야기를 취재했다.
처음으로 신월동에 가방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중반. 하나 둘씩 늘기 시작한 가방공장은 80년대 후반에는 2,000여개의 가방업체와 7,000명 이상의 인력이 종사할 정도로 크게 호황을 누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의 모든 브랜드 제품들이 이곳을 거쳐 나갔다고 볼 수 있다.
신월동은 비행기 소음으로 건물 임대료가 저렴했고 그런 장점 때문에 가방 관련 업체들과 인력들이 전국에서 모여들면서 거대한 생산기지를 형성한 것이다.
40년 넘게 일해 온 이쌍화(61)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상경해 가방공장에 취직했다. 이씨의 회상에 따르면 그 당시서울역 앞에는 일자리를 구하러 막 서울에 도착한 사람들과 그들을 데려가려는 공장 사람들로 북적였다. 가방공장에서 이씨는 휴일도 없이 선배들의 매를 맞으며 재봉기술을 배웠다.
지금도 신월동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이씨처럼 3-40년간 한길을 걸어온 가방장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한 때 가방 생산을 통해 한국의 경제성장에 커다란 기여를 해 왔다는 깊은 자부심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가방업체들이 하나둘 떠나고 신월동 일대 많은 공장들은 문을 닫아야 했다. 그나마 남아있는 공장들도 수차례 부도 등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떠나면서 이제는 젊은이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지난 해 5월, 더 이상 위기를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신월동 가방 장인들이 여러 차례 모임을 갖고 마침내 협동조합을 결성한다. ‘양천가방협동조합’은 수십 년 경력 가방장이들의 고민과 더 나아가고자 하는 작은 희망에서 탄생하게 된다.
점차 규모가 커진 양천가방협동조합은 현재 52개 업체, 169명의 조합원으로 이루어진 어엿한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들의 첫 목표는 협동조합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일감을 찾는 것. 다행히 출범 직후 협동조합의 취지에 공감한 많은 지역 단체들이 호응해왔고 한국공항관리공단을 비록한 여러 기관들이 주문한 가방을 생산하여 납품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곳에서 생산한 가방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협동조합을 찾는 젊은 창업자들도 생겨났다. 청년 1인 창업자인 박인혁씨의 도움으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크라우드펀딩’(선주문 생산)이라는 새로운 투자 형식을 통해 가방을 생산하여 납품할 수 있었다. 가방을 생산할 줄만 알았지 판매나 홍보 등에 대해서는 취약했던 신월동 가방장인들에게 이들 청년 창업자들은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다.
양천가방협동조합의 최종 목표는 자체 브랜드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 오래 준비한 끝에 첫결실로 나타난 것이 ‘LANTT’(란트)라는 이름의 자체브랜드이다. ‘매혹적이고 실용적이며, 초월적 시간의 가치를 가진 가방’이라는 의미로 조합원들의 염원이 담겼다. ‘란트’는 1차로 3가지 형태의 배낭제품을 출시했으며 현재 2차로 새로운 디자인의 가방을 준비 중이다. 이 가방들에는 신월동에서 가방을 제조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 담겨있다.
재봉틀 소리가 잠잠해진 저녁 시간 신월동 협동조합 사무실. 3명의 젊은 청년들의 아이디어 회의가 한창이다. 오랜 시간 가방공장을 운영해오던 아버지를 이어받아 가방사업을 하게 된 조민우(32)씨는 뜻이 통하는 2명의 동료들과 새롭게 독자 브랜드 가방을 출시하려고 준비중이다.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언젠가 세계적 수준의 자체 브랜드 가방을 꼭 만들고 말겠다는 자신감과 패기는 넘쳐난다. 그를 위해 낮에는 부모님이 운영하는 가방공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퇴근 이후에는 밤을 지새우며 새로운 가방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부모세대가 가방공장의 역사를 만들었다면 자식세대들은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K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