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불통 여왕' 마인드가 국정 파탄 불렀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박근혜 리더십 참사' 심층진단<br>차기 지도자 검증부터 '인간성·인사능력' 반드시 따져봐야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6년 12월 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국가 리더십이 실종됐다. 대통령의 도덕과 권위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선(秘線) 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 방치를 넘어 사실상 공조했다. 작금의 국정 대혼란을 낳은 장본인은 바로 대통령 자신이다. 스스로 몰락을 자초한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 참사(慘事)’ 원인은 도대체 뭘까. 대통령과 정치지도자 리더십 연구 분야의 권위자인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 원장(행정학 박사)의 심층 진단을 들어본다.





최진 원장은 앞으로 국가 지도자를 선택할 때는 정치심리학적인 분석과 치밀한 검증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최진 원장은 앞으로 국가 지도자를 선택할 때는 정치심리학적인 분석과 치밀한 검증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의원과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를 역임하던 시절 ‘원칙’과 ‘결단’의 리더십을 가진 여성 지도자로 비쳤다. 하지만 막상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불통’, ‘고집’, ‘독선’ 등의 이미지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사람이 바뀐 것은 아닌 만큼, 우리 국민이 박 대통령의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화(禍)를 부른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최순실 일가와 오랫동안 깊은 관계를 이어왔다고는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 상식적으로 터무니없는 사건에 깊숙이 연루됐다는 사실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결국 박 대통령의 심리적 기저를 들여다봐야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 원장은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삶을 살아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결국 그런 삶이 일반 국민의 생각과는 괴리가 큰 국정운영 스타일을 보여주게 된 원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지만 중시하지 않은, 혹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그녀의 삶을 ‘심리학적으로’ 들여다봐야 이번 사태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나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청와대에 들어간 후 부모가 잇달아 총격에 피살되는 엄청난 사건을 겪었어요.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인간의 심리상태가 뿌리째 뒤흔들립니다. 한마디로 ‘멘탈’이 붕괴되는 거죠. 주변은 물론 세상의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박 대통령이 극도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을 때 최태민(최순실의 아버지)이 파고들었죠. 그러면서 박 대통령의 유일무이한 인간관계, 가족을 뛰어넘는 깊은 관계가 성립된 겁니다. 박 대통령은 최태민 일가에 대한 심리적 교감과 의존이 깊어지면서 점차 공사(公私) 구분을 못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너와 나를 동일시하는 관계’ 혹은 ‘그림자 관계’로 40년을 보내면서 작금의 사건이 터지게 된 겁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어요.”


최순실 일가와는 서로를 동일시하는 관계
최진 원장은 박 대통령이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아주 오랫동안 ‘닫힌 생활’을 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최고 권좌에 버티고 있던 1962년부터 1979년까지 ‘중세 유럽의 성(城)’과도 같은 청와대에서 18년 동안 살았고, 그 후 청와대를 나와 1998년 대구 달성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선으로 정치권에 입문하기까지 또 다시 18년 동안 세상과 거리를 두고 은둔 내지는 칩거 생활을 했다.

최진 원장이 말을 이었다. “(정치 지도자 중에서) 18년 더하기 18년, 도합 36년간 ‘닫힌 생활’을 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경우입니다. 보통 사람들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폐쇄적인 인생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특히 두 번째 18년 동안에는 한(恨)이나 울분을 삭이기 위해 말 그대로 ‘도’를 닦았을 겁니다. 물론 도를 닦을 때는 최순실 일가가 함께 있었죠. 그렇게 도를 닦으면서 얼마나 많은 내공이 쌓였겠습니까. 그러니 여의도에서 승승장구하면서 친박 계보를 만들고 대통령까지 된 거죠. 즉 도를 닦은 게 대통령이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니 그게 오히려 장애물이 됐습니다. 워낙 내공이 세니까 주변에서 직언을 못하는 거죠. 이게 바로 박 대통령의 불통과 폐쇄성으로 연결된 겁니다.”

이른바 ‘유체 이탈’ 화법은 박 대통령의 특징적인 캐릭터 중 하나다. 그녀는 자기 자신이 문제의 당사자인데도 마치 ‘강 건너 불 구경’ 하듯이 이야기하는 생뚱맞은 모습을 심심찮게 보여왔다. 그런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박 대통령의 머릿속이 궁금해질 정도다.

최진 원장이 말한다. “박 대통령이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눌 때 화법을 보면 마치 ‘구름 위의 선녀’ 같습니다. 예전에 사람들이 박 대통령을 가리켜 흔히 ‘공주’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여왕’에 가깝습니다. 그녀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존경하는 여성 지도자로 자주 거론한 사람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1533~1603·대영제국의 기초를 다진 영국 여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에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만을 정치적 롤모델로 언급하더군요. ‘여왕 마인드’가 무의식적으로 밴 거죠. 그런데 문제는 박 대통령 스스로는 그 사실을 모른다는 점입니다.”

최진 원장은 행정학 박사다. 그는 ‘대통령 리더십과 국정운영 스타일의 심리학적 상관관계’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논문에서 이른바 ‘융프라우 이론’을 분석의 틀로 삼았다. ‘융프라우 이론’은 최진 원장이 직접 지은 명칭이다. 분석심리학의 태두인 칼 구스타프 융,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정치학에 선구적으로 접목한 정치학자 해럴드 라스웰 등 세 사람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 유럽의 지붕으로 불리는 융프라우 산에 빗댄 것이다.




최진 원장이 자신의 저서인 ‘대통령 리더십 총론‘에 팔을 얹고 포즈를 취했다.최진 원장이 자신의 저서인 ‘대통령 리더십 총론‘에 팔을 얹고 포즈를 취했다.


‘융프라우 이론’으로 대통령 리더십 분석
최 원장은 직접 창안한 ‘융프라우 이론’을 바탕으로 역대 한국 대통령들의 리더십을 비교· 분석하는 흥미로운 작업을 했다. 통상적으로 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연구는 정치학자와 행정학자들의 영역이다. 주목할 것은 최 원장이 대통령 리더십에 대해 심리학적 분석 틀을 도입함으로써 선구적이고 차별화된 연구 성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최진 원장은 자신의 이론적 안목을 바탕으로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일찌감치 예측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의 예상을 “열 배 이상 뛰어넘을 만큼 충격적인 문제”가 벌어졌다고 탄식했다.


“저는 박 대통령과 참모들의 대화가 안될 것이라고 봤습니다. 참모들이 직언을 못하는 것도 포함해서요. 다만 극소수의 측근들과만 대화할 것이라고 봤죠. 또 박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을 제대로 못하리라는 것도 이미 예상했습니다. 이는 박 대통령의 ‘성격’과 ‘스타일’ 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대통령이 되고 나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내다본 겁니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문제가 발생해버렸습니다. 모든 권력자에게는 비선 측근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 박 대통령의 단점을 보완하는 ‘건강한 비선’ 역할을 했다면 지금 같은 최악의 사태는 안 벌어졌을 텐데 하는 생각입니다. 또 최측근 비서 3인방이 제대로 보좌를 못하면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정무수석, 민정수석 등이 역할을 했어야 하는데, 그런 보완장치가 없다 보니 돌이킬 수 없는 늪에 빠지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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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정국은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개헌을 통해 대통령에 권한이 집중된 현재의 권력구조를 개편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국회가 국정운영의 중심이 되는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 4·19혁명 이후 수립된 제2공화국 시절 의원내각제를 도입했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여야 유력 대선주자들의 입장 차이 때문에 차기 대통령선거 전에 권력구조 개편을 추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최진 원장은 개인적으로 의원내각제 개헌보다는 현행 대통령제를 보완하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그의 설명이다. “개헌을 추진하게 되면 국론분열 등 혼란과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또 막상 내각제를 도입하더라도 총리가 수시로 바뀌고 국정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사실 이번 사태가 벌어진 것은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사람, 즉 대통령의 문제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권한을 견제하는 방식으로 몇 가지 제도적 보완만 하면 됩니다. 가령 행정부 산하 감사원의 감사 기능 일부를 국회로 이관하거나 검찰총장 인사권을 국회가 행사함으로써 검찰 중립성을 담보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정치심리학적으로 대선주자 분석·평가 필요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 붕괴로 차기 대선주자들의 본격적인 행보가 더욱 앞당겨지게 됐다. 현재 여야의 대선주자를 합치면 열 명이 넘는다. 향후 정국은 한동안 혼미한 상태가 이어질 공산이 높다. 시대가 혼란스러울수록 정치 지도자들의 역할은 더욱 커진다.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값비싼 교훈을 얻은 터라 차기 대선주자들의 검증 과정은 더욱 엄격하고 치밀해져야만 하는 상황이다.

최진 원장이 말한다. “대선후보들을 검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인간성(Personality)’ 검증입니다. 품성, 인성, 인간됨됨이, 정신세계 등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인간성을 검증할 때는 각 후보의 성장과정, 성격, 스타일을 엄밀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이런 부분에 대한 검증이 거의 전무했습니다. 과거에는 정책과 공약, 정치공학적 프레임, 안보 변수 등으로 후보를 선택했어요. 하지만 이제부터는 ‘정치심리학적 분석’으로 각 후보들을 과학적·체계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인간성과 더불어 한 가지 더 핵심적인 검증 항목을 들자면 바로 ‘인사 능력’입니다.

과거 요직에 있을 때 어떤 인사 스타일이었는지를 따져보면 대통령이 됐을 때 어떤 인사를 할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후보의 주변인물과 가족들도 살펴봐야 합니다. 현재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는 사람들은 인간성과 인사 능력, 이 두 가지 기준으로 먼저 자신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부족한 게 있다면 보완해야 되겠죠. 또 언론매체들과 전문가들은 인간성과 인사 능력을 기준으로 대선주자들을 제대로 분석·평가해 국민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한자로 풀어본’ 역대 대통령 리더십 유형]
문민정부 출범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어떤 리더십의 소유자였을까. 최진 원장은 한자(漢字) 한 글자씩을 이용해 역대 대통령들의 리더십을 비유했다.



▲ 김영삼 전 대통령 | 石 (돌 석)
단단해서 깨지지 않는 차돌과 같은 돌파력으로 격동의 시대를 헤쳐나가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다. 다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진흙처럼 흡수력과 융통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부족함이 있었다.






▲ 김대중 전 대통령 | 氣 (기운 기)
기가 아주 세다. 군부독재 시대의 모진 바람을 ‘인동초’처럼 견뎌냈다. 70대 고령에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특유의 기운으로 외환위기를 이겨냈다. 또 국민과의 소통에 노력하면서 신망이 더욱 높아졌다.






▲ 노무현 전 대통령 | 風 (바람 풍)
청년기의 삶도, 정치인의 삶도, 대통령이 될 때도,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운영할 때도, 그리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바람’과 같았던 풍운아다. 정치 스타일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바람몰이 같았다.






▲ 이명박 전 대통령 | 速 (빠를 속)
대기업 경영자 출신답게 목표 달성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스타일이다. 한국의 기업 경영자들은 단기간에 높은 성과를 원하는 게 주요 특징이다. 그 특징 그대로 대통령이 된 후에도 단기적이고 신속한 성과주의를 지향했다.






▲ 박근혜 현 대통령 | 巖 (바위 암), 根 (뿌리 근)
바위처럼 한 자리에 버티는 요지부동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달리 말하면 고집스러움이다. 또 비슷한 의미로 뿌리가 깊게 박혀 절대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김윤현 기자 unyon@hmgp.co.kr

김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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