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핵심축 가운데 하나인 한미약품이 잇따른 악재로 흔들리고 있다. 지난 9월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폐암신약 ‘올무티닙(국내명 올리타정)’의 기술수출 해지 통보를 받은데 이어 한미약품의 다른 수출 계약도 해지될 경우 한미약품은 물론 다른 바이오 업체도 동반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약품이 싹 틔운 ‘제약·바이오 대세론’이 ‘거품론’으로 뒤바뀔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7일 미국 내 신약개발 현황 등을 알려주는 웹사이트 ‘클리니컬트라이얼스’에 따르면 얀센은 지난달 30일 한미약품으로부터 기술도입한 당뇨·비만 바이오 신약인 ‘JNJ-64565111(한미약품 신약명은 HM12525A)’의 임상시험 환자 모집을 ‘일시적으로 보류(Suspended)’했다. 해당 임상은 올 7월 시작해 내년 4월께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이번 임상 환자 모집 보류가 미칠 파장을 두고 업계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한미약품은 환자 모집이 ‘중단(terminated)’된 게 아니기 때문에 임상이 언제든지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 제약사의 선임연구원도 “임상을 진행하다 보면 생각지 않은 효과가 나타나거나 초기 준비가 미흡해 임상을 중지했다 재개하는 일이 흔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임상 보류 결정이 약물의 미흡한 효능이나 부작용, 기술적 문제 등에 따른 후속조치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미약품이 임상 중단의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표현만 ‘보류’일뿐 사실상 ‘중단’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11월 HM12525A를 계약금 1억500만 달러 등 최대 9억1,500만달러 규모로 얀센 측에 기술수출을 했다. 만약 약물 효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기술 해지로 이어진다면 계약금 이외에 추가적인 마일스톤(단계별 수출료)은 받을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 HM12525A가 약물 효과를 연장하는 ‘랩스커버리’ 기술이 적용됐다는 점에서 지난해 11월 사노피에 기술수출한 에페글레나타이드 관련 계약에 미칠 영향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계약금 4억유로를 포함, 최대 39억유로(약 5조원) 규모로 랩스커버리 기술이 적용된 에페글레나타이드를 사노피에 기술수출한 바 있다. 지난해 한미약품의 기술수출 사례 중 가장 큰 건이다.
문제는 에페글레나타이드 또한 임상 진행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점이다. 한미약품은 지난 10월 관련 준비 미흡 등을 이유로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임상 3상 돌입 시기가 애초 올 4·4분기에서 내년으로 미뤄졌다고 밝힌 바 있다. HM12525A의 임상 보류 이유가 약물 효능 등과 관련이 있을 경우 임상 3상 돌입 예정인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상업화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외에도 한미약품이 지난달 30일 결정된 임상 보류 사실을 언론의 기사화와 주주들의 문제 제기가 이어진 7일에야 알린 것에 대해서도 늦장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미약품은 이날 오후1시30분께 보도자료를 통해 “임상 중단이 아닌 임상환자 모집이 일시적으로 유예된 것으로 얀센과의 파트너십에도 전혀 변화가 없다”고 밝혔으며 같은 날 오후2시15분에는 공시를 통해 관련 내용을 알렸다. 하지만 이날 장 시작 직후부터 증권사 보고서를 근거로 투자자들의 매도 주문이 쏟아졌던 것을 감안하면 보다 빠른 대응이 필요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