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돌고 돈 북미자유무역협정…한국도 영향권?





1993년12월8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서명했다. 전임 조지 부시 대통령이 브라이언 멀로니 캐나다 총리, 카를로스 살리나스 멕시코 대통령과 가조인한지 1년여 만에 빛을 보기까지 NAFTA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부시가 시작한 NAFTA를 마무리하기 위해 클린턴은 많은 공을 들였지만 민주당조차도 쉽게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더욱이 11월 선거에서 의석수가 여소야대로 바뀐 상황. 클린턴은 절대 다수를 점한 공화당을 설득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결국 클린턴은 하원 표결에서 찬성 234표(공화 132표, 민주 102표)를 얻어 반대 200표를 눌렀다.


클린턴이 결코 높게 평가하지 않았던 전임 부시 대통령이 벌린 NAFTA에 매달린 이유는 선거 공약이었기 때문. 1993년 대선에서 공화당 표를 잠식하고 제 3의 후보인 로스 페로와 차별성 부각을 위해 NAFTA를 적극 밀었다. ‘경제가 문제야, 이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를 선거 구호로 활용했던 클린턴은 구체적인 정책대안으로 NAFTA를 골랐다. 당연히 선거전부터 NAFTA 체결 문제는 이슈로 떠올랐다.

클린턴 후보는 ‘NAFTA 협정 발표 초기 2년 동안 미국에 일자리 20만 개가 생길 것’이라며 낙관론을 펼쳤다. 반면 페로 후보는 ‘미국 남부 국경지대 공장에서는 보통 시간당 12~14 달러를 시급으로 지급하지만 멕시코에서는 1달러면 고용이 가능하다’며 미국의 제조업을 더욱 망가트릴 것‘이라는 재앙론으로 맞섰다. 정작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한 주인공으로 재선을 노리던 조지 부시 대통령은 뒷전인 채 민주당 클린턴 후보와 무소속 로스 페로가 열띤 찬반 논쟁을 펼치는 기묘한 상황 속에 클린턴은 승리를 따냈다.

클린턴 대통령의 노력으로 가까스로 비준된 NAFTA의 내용은 한 마디로 역내 경제권 형성. 102개 조문에는 회원국 간 관세 인하와 기술·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담았다. 인력 이동의 자유도 논의됐으나 멕시코인들의 대거 유입을 우려한 미국의 반대로 끝내 포함되지 않았다. NAFTA의 비준 여부를 주목하던 세계 각국은 바쁘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세 나라를 합쳐 인구 3억 6,000만명에 역내 총생산 6조8,000억 달러에 이르는 초거대 단일경제권의 탄생이 몰고 올 파급효과를 우려해서다. 가능한 많은 국가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으면 국제 무대에서 고립될 것이라는 경고도 잇따라 나왔다.

당시의 우려와 두려움, 경고는 과연 맞는 것이었을까. 나프타 비준 23년을 지나는 오늘날 경제성적표를 보면 답이 나올 것 같지만 그리 간단하지 않다. 무엇보다 통계가 한 방향이 아니다. 좋게 해석한 지표와 그 반대의 지표가 섞여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제조업의 생산성은 높아졌으나 미국 내 일자리는 1,700만개에서 1,200만개로 줄어 들었다. 멕시코에는 미국 시장을 노린 자동차와 가전, 철강 등 글로벌 메이커들이 들어왔다. 그러나 농업은 붕괴 직전이고 양극화 현상은 보다 심해졌다. ‘데킬라 위기’로 상징되는 지속적인 환율 평가절하 추세도 구조적인 문제로 꼽힌다.*


미국 시장을 노린 각국이 공장을 짓는 통에 멕시코는 세계 1위의 자동차 수출국으로 부상했으나 미국도 결코 손해만 입지는 않았다. 미국기업이 투자한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하는 완제품의 절반 가량이 미국제 부품으로 오히려 제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켰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과 멕시코 중에 누가 NAFTA의 덕을 봤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캐나다는 소리 소문 없이 이익을 향유한 것으로 평가된다. 캐나다 대졸 인력들이 미국에 취업하는 문턱이 보다 낮아지고 미국 기업의 캐나다 투자도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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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사실은 두 가지다. 첫째, 경제학자들의 분석은 제각각이나 일반 미국 시민들의 체감하는 NAFTA의 효과는 달랐다는 것이다. NAFTA가 발효된 이후 처음에는 3개국의 평균 만족도가 높았으나 2004년을 기점으로 불필요했다는 응답이 더 많아졌다. 두 번째는 이런 기류가 미국 대선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클린턴과 페로 후보의 논쟁처럼 2016 미국 대선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힐러리 클린턴은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NAFTA 긍정론을 주장한 반면 도널드 트럼프는 NAFTA 때문에 일자리가 줄었다는 대중적 반감을 활용해 대권을 거머쥐었다. 민주당 우세 지역에서 공화당으로 넘어간 지역의 공통점이 바로 제조업 일자리 격감 지역이었다. 단순 기술직 일자리의 감소는 하층 백인들의 민주당 이탈과 예상을 뒤엎은 트럼프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미국 내 논쟁이 세계 경제와 우리 경제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다는 사실. 최근 흘러나온 트럼프 당선자 진영의 내부자료 ‘취임 200일 무역정책’에는 ‘취임 첫날 NAFTA 재협상 또는 파기’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트럼프 당선자가 상무장관으로 지명한 억만장자 윌버 로스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NAFTA 재협상이 장관 취임 첫 날 할 일’이라고 최근 밝혔다. 일각에서는 무관세인 멕시코산 공산품에 관세 35%를 물릴 것으로 전망한다. 멕시코에 진출한 기아자동차와 삼성전자, LG, 포스코 등 한국기업으로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다.

해외진출 기업 뿐 아니다. 미국은 중국을 비롯해 미국에 대한 무역수지 흑자국에 대한 압력에 나설 것이 확실시된다. 국내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막상 정권을 잡으면 후보 시절과는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 어린 낙관을 내놓고 있으나 무역에 관한 한 태도가 전례 없이 강경하다. 오바마 대통령조차 취임 초기에는 NAFTA는 물론 개별 자유무역협정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계획을 세웠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세계 무역의 기상 예보는 험하고 불규칙하다.

우리로서는 대외 요인으로 인한 경제적인 난국이 찾아올 수 있다는 얘기다. 대선주자들은 저마다 대권을 잡을 꿈을 꾸겠지만 막상 현실화하는 순간에는 경제가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혼란을 질질 끌게 아니라 하루바삐 정국을 안정시켜야 할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뜩이나 박근혜 대통령이 남긴 경제성적표가 낙제점인 상황. 누구든 다음 대통령은 경제로 골머리 썩게 돼 있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 경제가 겉으로는 나아지는 데 자국 통화의 가치는 갈수록 떨어지는 나라는 한국과 멕시코 뿐이다. 그나마 멕시코는 23년 이런 현상을 겪었지만 한국은 해방 이래 원화 평가 절하가 지속되고 있다. 소규모 개방경제와 수출 위주의 산업정책에 따른 귀결이지만 자칫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의 타깃이 될 수 있는 위험 요소이기도 하다. 수출 기업의 품질경쟁력 향상 노력 만이 해답이다.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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