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류모(50·서울 서초구)씨는 최근 병원에서 한약재 독성으로 인한 급성간염 진단을 받았다. 살을 뺀다고 먹은 다이어트 한약이 원인이었다. 류 씨는 직접 한의원을 가지 않고도 간단한 전화상담만으로 체질에 맞춘 다이어트 한약을 지을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약을 구매했다. 상담 후 택배로 약을 받아 복용하던 류 씨는 그 때부터 심각한 부작용을 호소했다. 알고보니 류 씨가 먹은 한약은 무자격자 건강원에서 임의로 조제해 만든 불법 한약이었다.
하마터면 류 씨의 목숨을 앗아갈 뻔 했던 불법 한약 제조 업자가 붙잡혔다.
서울시 특별사법경찰은 2004년부터 이 같은 방법으로 3만여명에게 불법 다이어트 한약을 제조·판매한 고모(54)씨를 구속하고, 고씨에게 고용돼 일한 한약사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이 불법 한약 제조를 통해 챙긴 부당이득은 65억원에 달했다.
특사경에 따르면 고 씨는 한약사를 고용, 위장 한약국을 운영하면서 전화 상담을 통해 마치 각자 체질에 맞는 맞춤형 한약을 조제해주는 것처럼 하고 실제는 제조한 불법 다이어트 한약을 일괄 택배 배송해 판매했다. 평소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지만 바쁜 직장생활로 인해 한약국이나 한의원을 직접 방문하는 게 쉽지 않은 이들을 악용한 것이다.
고 씨는 의학 전문지식도 없고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의약품 제조허가를 받지도 않은 무자격자임에도 인터넷에서 떠도는 자료를 조합, 자신만의 비법이라며 본인이 운영하는 건강원에서 다이어트 한약을 제조했다. 16가지 약재로 제조했다는 이 한약은 한약 기준서에도 없고, 임상시험조차 거치지 않아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무엇보다 다이어트 효과는 있으나 심장질환이나 고혈압 환자에게는 치명적 위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마황’을 주원료로 사용해 자칫 인명피해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조사결과 실제로 한약을 복용한 소비자들이 급성간염은 물론 알레르기, 두통, 생리 이상 등 부작용을 호소했다.
고 씨 일당은 법망을 피하기 위해 한약국은 시내에, 불법 제조가 이뤄지는 건강원은 한약국과 멀리 떨어진 시 외곽 주택가에 만들고 영업해 왔다. 공과금 등 한약국을 운영하는 일체 비용은 한의사 명의사로 처리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김용남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장은 “전화상담만으로 다이어트 한약을 구매했다면 위험한 성분이 들어있을 수 있으니 즉시 복용을 중단해 달라”며 “조직적이고 지능적인 형태로 시민건강을 위협하는 불법의약품 등에 대해 수사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