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김준경 KDI원장, "기업 구조조정 가장 시급…정공법으로 환부 도려내야"

[서경이 만난 사람-김준경 KDI원장]

조선업 등 민관심의회 구성...자산가치 객관적 파악이 첫단추

추경으로 실업자 직업훈련·노후 인프라 개선 적극 투자해야

트럼프시대 '저금리 파티' 끝날 것..'제2 닉슨쇼크' 배제못해"

中사드보복 대응못하면 '한국산 소비저하' 구조문제 비화 우려

김준경 KDI 원장이 8일 오후 서울경제신문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송은석기자김준경 KDI 원장이 8일 오후 서울경제신문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송은석기자


대담=김정곤 경제정책부 차장 mckids@sedaily.com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대통령 탄핵 이후 우리 경제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로 기업 구조조정을 꼽았다. 그는 베이직(기본)으로 돌아가 플랜을 다시 짜고 정공법으로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이명박 정부와 현 정부도 구조조정의 진도를 많이 빼지 못했다”며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조선업 경기가 나빠지는데 우리는 오히려 정책금융을 지원했고 해당 부실기업도 요행을 바랐다”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보통 산업구조가 고도화될수록 제조업 고용인원은 줄어드는데 우리는 오히려 늘어나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제조업 종사자 수는 2010년 380만명에서 지난해 말 450만명을 넘으며 고점을 기록한 뒤 최근에야 줄어들기 시작했다.

김 원장은 “(제때 구조조정이 안 되다 보니) 기업은 매출액 증가율이 뒷걸음질칠 정도로 영업력이 크게 훼손됐고 사상 최저금리에도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못 갚는 부실기업 비중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3년 연속 못 갚는 이른바 ‘좀비기업’은 지난해 조사 대상 2만2,300개 중 14.7%인 3,278개에 달했다. 조선업과 해운업의 좀비기업 비중은 5년간 2배나 급증했다.

김 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인한 보호무역주의로 조선업 경기가 쉽게 회복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구조조정의 기본인 현황 파악(실사)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부적으로 과거 조선업 구조조정 경험이 있는 일본처럼 민관 합동심의회를 구성해 대우조선의 자산별 청산 및 존속가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첫 단추가 될 수 있다는 조언이다.

탄핵 이후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과 관련, 김 원장은 우리 경제가 위기 상황이지만 과거의 사례를 보면 충분히 극복해낼 위기 극복의 DNA가 살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60년대 중반 수입시장 개방 개혁, 1980년대 초반 중화학공업 구조조정에 성공하는 등 우리는 자발적 개혁을 한 전례가 있고 저력이 있다”면서도 “2003년 카드 사태와 같이 취약계층 중심의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많은 외환보유액, 국내총생산(GDP)의 8%에 육박하는 경상수지 흑자, 낮은 단기외채 비율, 금융기관의 충분한 외환 유동성 등을 고려하면 1997년과 같은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분석했다.

김 원장은 내년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내년 예산의 국회 심의 과정에서 구직급여 3,262억원, 산업재해급여보험 1,281억원 등 총 4,500억원의 예산이 삭감됐다”며 “구조조정이 진행되면 해고된 사람의 직업훈련이 필요하므로 여기에 초점을 맞춘 추경이 편성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돈을 쓸 사업이 없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노후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미 우리의 철도·도로 등은 선진국 수준으로 깔려 있지만 노후화 정도가 심각하다”고 문제 제기했다. 이어 “도심에서 싱크홀이 발생하는 등 한국은 ‘인프라 고령화 시대’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중앙·지방정부, 각 지방정부 간 갈등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게 두려워 안 할 수는 없다”며 “건설경기도 좋아지고 일자리도 생기며 국민안전도도 높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 원장은 구조개혁, 규제 완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도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머뭇거리다가는 선진국들에 국내시장까지 잠식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단적인 예가 의료 부문이다. 우리는 서비스활성화법안이 국회에서 몇 년째 표류해 원격의료 등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김 원장은 “우리나라 우수 인재가 모여 있는 곳이 의료계인데 규제가 많아 의료 부문 신산업 창출이 안 되고 있다”며 “반면 미국은 슈퍼컴퓨터로 진료하는 IBM의 ‘왓슨’이 등장하는 등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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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원장은 “우선 국회에서 서비스법·규제프리존특별법·노동개혁5법 등 경제 활성화 법안부터 통과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미국은 일단 신산업이 있으면 이를 허용하고 지켜보는 ‘웨이트 앤 시(wait and see)’ 정책을 쓰고 있다며 우리도 사전규제를 사후규제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 원장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대에 글로벌 환경의 다양한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예측했다. 우선 수년간 계속된 초저금리 ‘파티’가 끝날 것으로 봤다. 미국의 확장적 재정정책은 물가 상승을 촉발시키고 감세는 국채 발행을 늘려 결국 장기금리가 상승할 것으로 봤다. 그는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1980년대 고금리정책 이후 35년간 이어졌던 금리 하락 기조가 상승세로 전환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 원장은 “12월 연준이 금리를 올리고 내년에도 최소 두 차례 인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 경제에 ‘제2의 닉슨 쇼크’가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닉슨 쇼크는 1971년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이 모든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물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사태다. 당시 우리는 국내 경제 문제와 맞물리며 이듬해 모든 기업의 사채를 전면 무효 처리하는 ‘8·3 사채동결조치’로 연결됐다.

김 원장은 “미국 무역법 122조에는 대규모 국제수지 흑자국을 대상으로 15%까지 수입관세를 인상(최대 150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경우에 따라 일부 교역국은 닉슨 쇼크에 상응하는 어려운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요구와 관련해서는 “트럼프가 공식적으로 언급한 바는 없으며 우리가 이를 공론화하면 오히려 재협상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트럼프의 정책 대상은 일차적으로 멕시코·유럽이고 다음이 중국·중동 등으로 한국은 우선순위가 낮다”면서도 “민주·공화당 모두 원화 가치가 저평가돼 있다는 데 공감하고 있는 만큼 절상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트럼프가 1조달러의 인프라 투자계획을 밝힌 것과 관련, 미국은 설계부터 시공·운영까지 통합해 발주하는 시스템이지만 우리는 관련 규제로 이를 수행할 건설사가 없어 수주할 가능성은 낮다는 설명이다.

중국이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이후 기업 세무조사, 한국 연예인 출연 제한 등 경제보복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부가 이를 방치해 장기화하면 한국 상품에 대한 소비성향 자체가 하락하는 구조적인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며 “KOTRA 등 현지 네트워크와 외교채널을 가동해 현황을 파악하고 실효성 있는 지원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중장기적인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해 이제는 내수도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인구가 5,000만명에 불과해 시장이 협소하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작은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한국은 인구 순위가 27위이며 부유한 스위스 등 유럽 국가들의 인구(1,000만명 이하)보다도 많다”며 “국민소득이 높아지려면 결국 국내에서 생산과 소비활동이 활발해져야 하며 대외 통상 압력도 축소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리=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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