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는 ‘탄핵 열차’가 출발했고 미국에서는 금리 인상과 트럼프호 출항이 예정돼 있다. 유럽의 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신흥국은 매력적인 투자처지만 그만큼 위험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이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표결 직후 주요 증권사의 프라이빗뱅커(PB)들을 대상으로 ‘지금 1억원을 투자한다면 어디가 좋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고액자산가의 자산 관리를 하는 PB들은 주저 없이 ‘미국 주식’에 한 표를 던졌다. 한국 주식시장은 탄핵으로 불확실성이 다소 해소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정치적 불안감에 휩싸였다며 PB들의 추천 투자자산에서 제외됐다. 채권 투자는 채권시장 안정 펀드 가동 등의 변수에 따라 ‘옥석 가리기’가 관건일 것으로 전망된다.
PB들이 미국 주식을 탄핵 이후 우선으로 꼽은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강력한 재정정책 등 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배승호 하나금융투자 청담금융센터 PB는 “가장 강력한 성장세를 보이는 미국 대형 기업에 투자를 권한다”며 “정책 수혜주인 인프라·보험업의 비중이 높은 미국 펀드가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최근 뉴욕증시가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웠지만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골드만삭스는 내년 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이 2,300선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 소비·고용·가계부채 등 각종 지표가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내년 경제성장률도 2.5%로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상윤 미래에셋증권 잠실지점 수석웰스매니저도 같은 이유로 미국 주식시장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매니저가 제안한 미국 주식은 4차 산업 관련주, 스타벅스·언더아머 같은 글로벌 소비주다. 이 밖에 한준택 이베스트투자증권 강남금융센터 PB도 “트럼프의 보호무역으로 미국의 경기 상승이 예상된다”며 미국 대형주를 추천했다.
신흥국 중에는 중국에 대해 우호적인 의견이 많았다. 배 PB와 정 매니저 모두 “인프라·정보기술(IT) 등 중국의 정책 수혜주를 사라”고 조언했다. 수출 증가, 인프라 투자 증가 등의 조짐에 주목하라는 설명이 더해졌다.
국내 증시에 대한 의견은 엇갈렸다. 조은철 미래에셋대우 청량리지점 PB는 “(탄핵 가결은) 시장의 악재가 하나 해소된 것일 뿐 방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며 신중한 투자를 조언했다. 정 매니저는 “대기업이 실적은 부진한데 투자를 꺼리고 있고 소비, 정부 재정지출 등도 제자리걸음”이라며 “국내 증시는 점점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성현정 NH투자증권 프리미어블루 골드넛센터 부장은 투자자산의 절반을 현금 보유할 것을 권했다. 성 부장은 “탄핵안 가결로 모든 정치적 리스크가 해소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40~50% 정도는 현금성 자산으로 갖고 있어도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반면 기업 실적 개선, 배당주 수익 등에 기대를 거는 의견도 제시됐다. 서지형 한국투자증권 마포지점장은 “내년 한국 기업들의 이익이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할 것”이라며 자산배분형 펀드와 배당주 랩·펀드 등을 추천했다. 가치투자·장기투자를 중시하는 신영증권의 임동욱 명동지점 팀장은 “연말인데도 배당주가 못 올랐다”며 배당률이 높은 주식을 제안했다.
금리 인상기의 채권 투자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다만 글로벌 채권에 대해서는 옥석 가리기로 포트폴리오를 보완하고 고수익도 노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서 지점장은 브라질 국채를 지목했다. “브라질 헤알화의 가치는 2013년 대비 여전히 40%가량 낮고 금리 인하기에 접어들고 있다”며 “올 들어 많이 올랐지만 여전히 10%가량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임 팀장은 “전반적으로 채권은 추천하지 않고 있지만 미국 물가채는 투자할 만하다”고 전했다. 이 밖에 고수익 채권에 투자하는 ‘AB글로벌고수익’ 등도 추천 상품으로 꼽혔다. /유주희·박시진·김연하기자 ginge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