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타즈만, 뉴질랜드 발견





1642년12월13일, 탐험가 아벨 타스만(Abel Tasman·당시 39세)의 눈에 새로운 땅이 들어왔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 소속인 타즈만은 주로 동아시아 교역에서 경험을 쌓았던 젊은 선장. 포모사섬(타이완)과 필리핀의 여러 섬, 일본 데지마(에도 막부가 네덜란드와 교역을 허용했던 약 4,000평의 인공섬)를 오가며 통상 업무를 주로 맡았다. 동인도회사는 1642년 그에게 특별한 임무를 맡겼다. 오스트레일리아 인근과 남태평양에서 아직 까지 찾아내지 못한 섬을 찾아내라는 것. 특히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언급한 보물섬을 찾아내는 임무도 떠맡았다.


오스트레일리아 남부를 항해하며 이미 거대한 섬(타즈마니아)을 발견했던 터. 타즈만 일행은 타즈마니아 발견 17일 만에 다시금 큰 섬을 찾아내는 개가를 올렸다. 타즈만은 경관과 천혜의 항구 조건을 갖춘 섬에 고향의 지명을 붙였다. ‘지일란트’ 출신인 그가 새로 발견한 섬에 붙인 이름은 ‘니우 지일란트(Nieuw Zeeland·새로운 지일란트)’. 타즈만의 감격은 오래가지 못했다. 원주민 마오리족의 저항에 봉착해 선원 네 명을 잃은 그는 황급히 닻을 올렸다.

타즈만은 다시는 니우 지일란트를 찾지 않았다. 2차 남태평양 항해에서도 호주 대륙 북서부 해안 탐사에 그쳤다. 동인도회사에서 직위가 높아져 시암(태국), 필리핀과 교역에서 업적을 남기고 바타비아(요즘 자카르타)에 대저택과 농지를 보유한 대지주로 윤택하게 살다 56세에 죽었다. 타즈만의 사망 이후 니우 지일란트는 더욱 잊혀졌다. 존재만 알려졌을 뿐 더 이상 유럽인의 발길이 이어지지 않았다. 네덜란드가 다른 나라의 접근을 막으려 마오리족의 호전성을 과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니우 지일란트에 다시금 유럽인이 찾아온 시기는 1769년.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은 해안을 샅샅이 탐사하고 이름을 영국식인 ‘뉴질랜드’로 고쳐 불렀다. 쿡 선장의 탐사 이후 뉴질랜드에는 선교사와 당시에는 가장 고부가가치산업이던 포경선과 고래 사냥꾼이 몰려들었다. 영국령 뉴질랜드의 초기 역사는 고래와 물개 뿐 아니라 사람의 피도 불렀다. 마오리족과 영국은 ‘제국주의 역사상 가장 공정한 협정’이라는 와이탕이 조약을 체결한 뒤에도 두 차례의 전쟁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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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는 ‘와이탕이 데이’ 축제가 열리는 와이탕이 조약 체결일은 1840년 2월6일. 영국과 원주민 마오리족 추장 46명이 서명하면서 현대 뉴질랜드 국가가 출발했다. 조약의 내용은 세가지. 주권을 영국에 이양하고 마오리족은 토지와 어업권 등 재산을 소유하되 매도할 경우 영국의 허가를 받으며 영국은 마오리족을 보호하고 영국시민이 누리는 권리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조항도 단 3개뿐인 이 조약을 맺은 후 영국은 7개월 동안 남섬과 북섬을 돌며 부족장 500명의 사인을 받아냈다.

조약 자체는 평등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원주민들의 토지를 수탈하려던 ‘뉴질랜드 회사’ 등의 탐욕 탓이다. 마오리족은 두 차례 전쟁을 일으키며 반발했으나 유럽산 질병과 총포 앞에 무릎을 꿇었다. 힘을 얻게 된 식민지 총독도 와이탕이 조약을 공공연하게 무시해버렸다. 원주민은 완전히 쫓겨났다. 백인들은 1974년에서야 원주민 박해를 사과하며 와이탕이 조약일을 공식 휴일인 ‘뉴질랜드 데이’로 정했다.

1996년에는 조약 위반을 공식 사과하고 원주민에게 1억7,000만달러와 2억여평의 토지를 돌려줬다. 뉴질랜드 지역에 마오리족이 터전을 잡은 시기는 1250~1300년경으로 추정된다. 300~400년 이상 터전을 잡고 삶의 뿌리를 내렸던 마오리족의 항거도 뉴질랜드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벨 타스만의 발견은 백인중심 국가 뉴질랜드의 탄생을 알리는 예고편이었다면 마오리족의 저항은 백인의 일방적인 통치와 환경 파괴를 막은 원동력이었다.

서구인 최초의 발견자인 타스만은 뉴질랜드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그의 이름을 딴 빙하와 호수, 산과 강, 해안, 국립공원과 거리며 고속도로, 교량이 뉴질랜드 전역에 깔려 있다. 오늘날의 뉴질랜드는 자연보존이 잘된 나라로 손꼽힌다. 374년 전 타스만의 발견 당시와 큰 차이가 없다. ‘반지의 제왕’을 비롯한 영화 촬영지로 각광 받는 것도 환경보존 노력 덕분이다. 젊은이들이 호주로 떠나고 있다지만 청정국가로서 뉴질랜드의 경쟁력은 여전하다. 영화제작자들과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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