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발표되고 3시간여 뒤인 오전7시30분. 금리 인상의 영향과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돌았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은 전 세계 경기 흐름을 한꺼번에 바꾸는 핵심 변수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달러화 가치가 치솟고 글로벌 머니무브(자금의 대이동)가 이뤄지면서 채권· 주식·원자재시장이 요동치고 한국 경제도 큰 영향을 받게 된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현재 “최고 수준의 긴장감과 경계감을 유지하고 필요한 경우 시장안정 조치를 취해나간다”는 수준에서 대응하고 있다. 정부가 보유한 수단은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15일 한국경제연구원이 주최한 세미나에서는 내년에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가들에 다시 금융위기가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대내외 금리차이(스프레드)가 발생해 외국인 자금 유출이 일어나고 환율이 급등하며 내수와 수출 등 실물경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과거에도 정치적 불확실성은 위기를 더욱 증폭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오정근 초빙연구원(건국대 특임교수)은 “우리나라도 1997년과 2008년에 이어 다시 위기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종전 두 번의 위기가 발생한 배경에는 정치적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며 “지난 10월부터 불거진 최순실 게이트로 외환위기가 재연되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국내 금리가 상승할 경우 한계기업이 증가하고 1,3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 부실로 인한 금융기관의 위기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자금 유출로 실물경제가 얼어붙고 결국 성장률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미국 국채금리가 0.25%포인트 상승하면 한국의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은 3개월 후 3조원이 유출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한국 경제 성장률은 2~3분기에 걸쳐 0.15∼0.25%포인트 하락했다가 1년 6개월 이후 안정을 되찾는 것으로 추정했다.
우리나라의 대외 지급 능력을 보여주는 3대 지표인 외환보유액, 단기외채 비중, 경상수지는 양호한 수준이다. 외환 보유액은 외환위기 때인 1997년 204억달러,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2,012억달러에서 지난 11월 현재 3,720억달러로 불어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1.8배 증가한 수치다.
외환위기 당시 103억달러 적자를 기록한 경상수지는 2008년 32억달러 흑자에서 10월 현재 819억달러에 이른다. 국제금융시장 혼란기에 급격히 빠져나갈 수 있는 단기외채 비중(총외채 중 만기 1년 미만인 외채)도 1997년 36%, 2008년 47%에 이르렀지만 올해 9월 현재 27.9%로 안정됐다. 정부가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급격한 자본유출이 일어나더라도 아직은 안전하다고 보는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최근 “위기가 닥치면 현재 외환보유액으로는 안심하기 어렵다”며 “1,000억달러 정도는 일주일이면 빠져나간다”고 경고했다. 그는 “전체 외환보유액 가운데 2,000억달러는 국제통화기금(IMF) 등에 사실상 묶여 있어 우리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돈”이라고 말했다. 오 초빙연구원은 “외환위기가 닥칠 경우 지금보다 최소 1,000억~1,500억달러 정도는 더 외환보유액이 있어야 안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현재 외국인 자금유출에 대비할 수 있는 카드는 사실상 통화 스와프와 거시건전성 3종세트(선물환 포지션 규제, 외환 건전성 부담금,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뿐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미국이 9년 6개월 만에 금리를 인상하자 2010년에 도입한 3종 세트를 일부 손질했다. 그러나 이로는 신흥국의 급격한 자본 유출로 인한 금융위기의 도미노가 발생할 경우 대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통화 스와프 역시 중국 등 아시아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면 주요국과는 모두 중단된 상태다.
정부는 일본과의 통화 스와프 체결을 준비하고 있지만 국내 정치적인 불확실성으로 실제 체결 여부는 미지수다. 이날 현대경제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한미 양국의 금리 격차가 0.50%포인트까지 좁혀진 것은 2007년 11월 이후 처음”이라며 “외국인 자금 유출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종=김정곤기자 mckids@sedaily.com